'세기 이벤트' 미-이란 정상회담 성사?…이란에 필요한 건 명분
이란, '신의 대리자' 최고지도자 승인하고 내부 반발 넘어야 가능
美의 궁극적 요구 '이란 역내 개입 중단'…이란, 수용 가능성 작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조건없이 만날 수 있다는 뜻을 공개석상에서 던지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또 하나의 세기의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당시의 정황과 분위기를 고려하면 정교하게 준비됐거나 사전 교감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예상을 뒤엎는 자신의 외교적 역량과 과단성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6년 6월 대선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협상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만큼 이번 그의 '깜짝 선언'이 현실화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이력 때문에 여러 전문가와 언론이 미-이란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 만큼 이란의 '결심'이 충족된다면 국제 외교사의 대형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커지게 된다.
양국 정상은 1980년 단교 이후 얼굴을 직접 맞대고 회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013년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한 로하니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것이 확인된 유일한 접촉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경제난이 심각한 이란이 제재를 피하려고 제삼자를 통해 미국과 물밑에서 접촉한다는 소문은 무성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란 외무부는 30일 "미국과 비밀회담설은 언론의 지나친 추측"이라면서 "미국은 믿을 수 없어 어떤 일이든 함께 도모할 수 없는 상대다"라고 일축했다.
또 로하니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처럼 적성국 미국과 정상회담을 과감히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의 정점이 아니다.
이란은 신의 대리인 격인 최고지도자가 입법, 사법, 행정 3부를 모두 통제하는 권한을 쥔 신정일치 체제다.
설사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과 정상회담으로 미국의 제재와 외교적 난맥을 돌파하고 싶어도 최고지도자가 승인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에 버금가는 반미 보수적 군부를 설득해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로하니 대통령이 만나는 '정상'회담은 형식적 틀일 뿐 실제로는 정상회담이 아닐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의 정치평론가는 연합뉴스에 "미국과 정상회담은 로하니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40년간 미국의 제재를 견딘 이란은 어렵더라도 일단 미국의 압박을 정면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미국과 접촉은 이란에서는 이슬람혁명 정신에 반하고 심지어 반역 행위로 인식된다"면서 "이란에서는 개방과 개혁을 원하는 여론만큼이나 미국의 불의와 압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정상회담은 이란 정권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에도, 미-이란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되려면 미국이 이란에 이런 높고 두꺼운 벽을 넘을 만한 충분한 명분을 줘야 한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이다.
미국의 급박한 필요와 요청으로 이란이 대등한 대화 상대로 정상회담장에 나왔다는 명분이 이란에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핵심부의 이란에 대한 발언을 종합해보면 미국이 이란에 원하는 궁극적 요구는 역내 개입 중단이다.
이란이 시리아,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예멘, 바레인, 팔레스타인에 군사·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면 제재에서 자유로운 중동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게 미국이 그리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는 이란으로선 불공정한 요구가 될 수 있다.
역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적성국 이스라엘이 이란의 수배에 달하는 국방비로 미국의 첨단 무기를 사들여 배치하는 상황에서 이란의 역내 군사적 영향력을 묶는 셈이어서다.
비핵화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북미 회담과 달리 이란의 역내 개입 제한은 미국과 이란의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큰 사안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이란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 이스라엘 등 미국의 중동 맹방과 조율해야 한다.
미국의 중동 내 정책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이란과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이견만 확인하는 일회성 '외교쇼'에 그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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