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이죠"

입력 2018-08-01 06:35
수정 2018-08-02 08:14
"한국은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이죠"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칼럼집 '선망국의 시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특성을 분석하면서 선망국(先亡國)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글자 뜻대로 풀자면 '먼저 망해가는 나라'다.

언뜻 망조가 들었다는 비관적 얘기로 들리지만, 사실은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문제를 겪는 만큼 선도적으로 해법을 찾는다면 인류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을 깐다.

조한 교수는 4년 만에 내놓은 칼럼집 '선망국의 시간'(사이행성 펴냄)에서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비관을 낙관으로 바꿀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은 아주 빠르게 부강해져 많은 개발도상국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높은 우울지수를 기록하는 나라가 됐다.

저자는 군부가 주도한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질문하는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출세와 돈벌이에 골몰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후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그럭저럭 물질적 풍요는 이뤘지만, 돈과 권력만 좇게 됐다는 것이다. 2014년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사와 같은, 한국사회가 드러내 보이는 모순들의 뿌리다.

저자는 "쓰나미처럼 몰려온 물신(物神)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순의 정점에 있던 국가 최고 권력자를 파면시킨 촛불 혁명처럼 세계사에 찾아보기 힘든 한국사회의 역동성에서 희망을 본다.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한 지대(comfort zone)'에 익숙한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습니다. 현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자기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안락하게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지만 한국 시민들은 급하게 뜨거워진 물을 감지한 개구리처럼 튀어 올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비유를 들면서 말입니다."

책에는 탄핵 정국과 촛불 혁명, 신고리 원전 공론화, 저출산과 고령화, 비트코인 광풍, 기본소득, 4차 산업혁명, 미투 운동, 남북정상회담 등 격랑의 시기를 통과하는 한국사회를 전환, 미래, 신뢰, 시민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묶은 저자의 칼럼, 인터뷰, 강연록, 대담이 담겼다.

286쪽. 1만6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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