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보다 무서운 건 고독"…시골 외딴집의 독거 노인들

입력 2018-08-01 07:05
[르포] "폭염보다 무서운 건 고독"…시골 외딴집의 독거 노인들

거동 불편해 무더위 쉼터도 못 가…예산 삽교읍 직원들, 하절기 취약계층 방문

(예산=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십년 넘게 현장 방문을 다녔지만, 아직도 이런 곳에까지 사람이 살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놀랄 때가 많아요."

낮 기온이 36도를 웃도는 지난달 31일 오후 3시께 충남 예산군 삽교읍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직 직원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박모(73) 씨의 집을 찾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폐업한 상가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방 한 칸과 부엌으로 된 10㎡ 남짓한 규모의 '집'이 나왔다.

명색이 집이라지만 현관문조차 달리지 않은 입구에는 끈으로 동여맨 휠체어가 놓여 있었고, 좁은 방 안은 겨울용 이불과 캐리어, 휴대형 옷장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사람 세 명이 앉기에도 모자랐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날씨에 사방이 건물로 막혀 있다 보니 통풍이 되지 않아, 폭염뿐만 아니라 퀴퀴한 냄새 때문에도 견디기 힘들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10여분을 넘게 서 있다 보니 집 밖 공중화장실을 다녀온 박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앙상한 다리로 불안하게 휘청이던 박 할아버지는 그대로 이불이 깔린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고 몇 번 들이마신 뒤에야 조금씩 정신이 드는 모습이었다.

직원이 "더운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묻자 박씨는 대번에 "너무 더워서 밤에 잠을 통 못 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씨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목디스크, 허리디스크에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어 복용하는 약만 10여종이 넘고, 호흡기 없이는 외출하기도 어려운 중증 호흡기 1급 장애인이다.

몸이라도 성하면 경로당이나 무더위 쉼터 등을 찾아 에어컨 바람이라도 쐴 수 있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는 박씨 같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직원 이은미씨는 "가족이 있으신 것으로 알지만, 본인이 젊은 시절 잘못한 게 많다며 연을 끊고 사시는 것으로 안다"며 "며칠 전 상태가 위독해져 경찰이 동생에게 연락했는데 30년 넘게 소식이 끊겨 그쪽에서도 많이 놀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찾아온 주민센터 직원들에 고마움을 표하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직원들은 박씨에게 장애 등급 신청 절차, 쓰레기봉투 지급 계획 등을 설명한 뒤 다음 집으로 향했다.



삽교읍 행정복지센터에서 가까운 50㎡ 남짓한 규모의 이모(81) 할머니의 집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씨의 집은 지난해 해비타트 사업에 선정되면서 슬레이트로 된 판잣집이 흙벽돌집으로 리모델링됐다.

올해 첫 여름을 맞는 새집에서 이씨는 "요새 더위가 그렇게 심하다는 데도 나는 못 느꼈다"며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앞뒤로 있는 창문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에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시원하다"며 웃었다.

이날 독거노인 관리사 김원순(64·여)씨가 이씨의 집을 찾아 말동무도 해 주고,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등을 살폈다.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요강도 놔드려야 하고, 먹으면 넘기질 못하고 토하기 때문에 치우고 하느라 옆에 사람이 없으면 위험하다"며 "그나마 돌볼 수 있는 이웃이 있는 집은 사정이 낫지만 홀로 계신 어르신들은 119 구급대를 불러줄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센터 직원들은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발굴하기 위해 건강보험료가 체납되거나 전기가 끊긴 가정들을 현장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

직원 박지수 씨는 "얼마 전 관내 독거 어르신 집에 점검차 전화를 했는데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 걱정돼서 가봤더니 집 앞 그늘을 찾아 의자를 놓고 앉아 계셨다"며 "시골 외딴집은 이웃이 없기 때문에 직접 가 보고 살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씨에게 물을 자주 마시고 선풍기를 밤새도록 틀어놓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집을 나왔다.

삽교읍 행정복지센터는 내달까지 관내 기초생활수급자 홀몸 어르신 170가구 중 요양 병원에 입원하거나 가족·친지들과 함께 있는 가구를 제외한 89곳을 선정해 하절기 위기 상황을 파악하고 폭염 대비 행동요령 등을 안내할 계획이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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