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의회 보고서 "국제구호단체 성범죄 행위 고질적…수년간 발생"
가해자들, 국제기구 버젓이 옮겨 다녀…"알려진 성범죄, 빙산의 일각일 수도"
"남성중심 보이스클럽 문화도 원인"…성적 비위 2001년 난민캠프까지 올라가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여성과 아동에 대한 국제구호단체 직원들의 성적 학대는 고질적인 것으로 수 년여간 발생해왔으며, 가해자들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구호단체 이곳저곳을 쉽게 옮겨 다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영국 의회의 조사로 확인됐다.
국제구호기구 내부의 성범죄 관리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영국 하원의 국제개발위원회는 31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을 담은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미 CNN방송이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올 초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등 대표적인 국제구호기구 직원들이 성 관련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진행됐다.
보고서는 먼저 "성적 학대 및 착취가 국제 원조분야 전반에 걸쳐 고질적인 것임이 드러났다"면서 "성적 학대는 원치 않는 성적인 언급에서부터 강간까지 걸쳐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세상에 알려진 성적 학대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가해자로 알려졌거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인들이 아무에게도 (성적 학대 사실을) 들키지 않은 채 이 국제기구에서 다른 국제기구로 쉽게 옮겨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국제구호기구들은 수 년에 걸쳐 자행된 성적 학대를 보고받았음에도 그 문제에 맞서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스티븐 트위그 하원 국제개발위원장은 "이번 보고서는 국제구호기구 분야에서 최소한 1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적 착취와 학대가 이뤄졌음에도 해당 단체들이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위그 위원장은 또 "실제 이 기구들에는 여성과 아동 그리고 다른 성적 착취 및 학대 피해자들 보다는 자신들의 명성이 종종 우선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옥스팜측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사보고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내용"이라며 "아이티에서 취약한 여성들을 돌보는 데 실패했음을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측도 "성희롱 논란 당시 이에 대처하는데 실수를 범했다"고 시인했다.
보고서는 또 문서로 기록된 구호대원이나 유엔 평화유지활동 대원들에 의한 성적 비위행위는 거의 20년 가까이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는 지난 2001년 라이베리아나 기니 그리고 시에라리온의 난민캠프에서 유엔이나 구호단체 직원들에 의해 13~18세 소녀들에 대한 성적 착취나 학대 경험이 적혔다.
한 피해자는 "구호기구 직원 한 명이 나를 임신하게 해놓고 떠난 뒤 다른 어린 소녀에게 갔다"고 말했다.
성적 학대 및 착취 피해자들은 낙태나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또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와 같이 성행위로 전염되는 질병에도 노출됐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유엔난민기구측은 당시 아동학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보고서는 8년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특히 구호품 배급센터를 중심으로 구호기구 직원들에 의한 여성들과 소녀들의 성적 착취와 학대는 이제 견고한 특징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경비요원에서부터 운전자 그리고 고위 관리자까지 폭넓은 직군 출신으로, 해당 지역이나 그 국가 출신 또는 외국인까지 섞여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구호기구 내부의 남성들이 지배하는 문화를 의미하는 '보이스 클럽'(Boy's club) 문화가 성희롱과 성적 학대가 제지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번창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최근 몇 달 동안 전 세계에 확산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는 뜻)운동이 성적 비위 행위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데 도움을 줬지만, 구호기구 분야의 경우에는 변화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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