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상습 폭언과 폭행·무보수…설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
경남이주민센터, 외국인 노동자 인권 침해 사례 공개…"합리적 고용제도 모색 필요"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2017년부터 경남 밀양의 한 농가에서 일손을 거들어주던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A(26·여)씨는 하루하루를 절망과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농가주인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보면서 어디 한 군데 속 시원히 호소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농가주인이 친구들을 위해 마련한 회식자리에 투입돼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심지어 술 시중까지 강요당하기도 했다.
특히 A씨는 술 취한 주인이 친구들 앞에서 농장에 온 뒤로 살이 많이 쪘다며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는 등의 수모도 겪었다.
주인 친구들이 모두 웃자 A씨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청소를 잘하라며 손으로 엉덩이를 때리거나 함께 춤출 것을 강요하는 등 최근까지 10차례 넘게 성희롱·성추행을 일방적으로 당했다.
올해 초 한 농가에 들어온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B(25·여)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인은 일하라며 엉덩이를 때리고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았으며 무보수 노동까지 종용했기 때문이다.
식사라며 반찬도 없이 컵라면 1개만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커다란 옹기를 땅에 묻어 화장실로 사용하라고 했다.
참다못한 이들은 결국 피해 사실을 신고, 현재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주인에게 밉보여 불법체류자가 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경찰에 호소했다.
경남이주민센터는 31일 경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 침해 사례를 공개했다.
남해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C(22)씨 등 2명은 사장의 사적 업무에 동원되고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D(24)씨는 지난 16일 함안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중 그를 불법체류자로 오인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집단폭행과 불법감금을 당했다.
당시 출입국 직원들은 D씨가 합법 체류자라며 항변하자 '다 알고 왔다'며 얼굴 등을 수차례 때린 뒤 끌고 가 5일 동안 구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센터는 "이들 사건은 최근 예멘 난민 입국 이후 사회 전반에 퍼진 외국인 혐오 정서와 연관이 있지 않나 우려한다"며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일그러진 태도가 고용 관계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이들을 구속·억압하는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지금이라도 합리적 고용제도를 모색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이주민 관련 법제와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주민센터는 이들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죄 및 배상,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고용허가제 재검토, 이민정책 컨트롤타워 설립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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