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지막 만남…밥 딜런, 여름밤을 물들이다

입력 2018-07-27 23:45
수정 2018-07-29 19:20
어쩌면 마지막 만남…밥 딜런, 여름밤을 물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내한공연…인사말 없이 2시간 노래

난해한 구성에 관객 반응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27일 저녁. 폭염에 데워진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들뜬 사람들로 가득 찼다.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77)을 기다리는 관객들이었다.

뮤지션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2016년), 반전과 저항의 상징, 1억2천500만 장 음반을 판매한 대중음악사의 전설. 수많은 수식어를 지닌 위대한 노(老)가수를 만나러 온 관객들은 이번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무대를 응시했다.

◇ 자유분방한 편곡에 엇갈린 관객 반응

오후 8시 2분. 아직 공연장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밥 딜런과 그의 밴드가 공연을 시작했다. 인사말은 없었다. 객석에 불이 꺼지자 갑작스레 음악이 흘러나왔다. 밥 딜런은 그렇게 오후 9시 48분까지 106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노래했다.

'올 얼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 '돈트 씽크 트와이스 잇츠 올라잇'(Don't Think Twice, It's Alright)부터 '순 애프터 미드나이트'(Soon after midnight), '가타 서브 섬바디'(Gotta Serve somebody)까지 19곡을 내달린 뒤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의 앙코르 요청이 쏟아지자 그는 9시 51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1960년대 저항의 상징으로 불린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선사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익숙한 가사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멈추고 공연에 빠져들었다. 일부 외국 관객은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 내내 무슨 노래가 진행되는지 알아채긴 쉽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편곡으로 모든 노래가 원곡과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말하듯이 툭툭 내뱉는 창법, 쇳소리가 섞인 거친 음색도 한몫했다. 한 관객은 "지금 부르는 노래를 음악검색 앱으로 찾아봐도 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일부는 도중에 퇴장했다.

두 번째 앙코르곡까지 마친 밥 딜런은 객석을 지그시 응시한 뒤 묵묵히 퇴장했다. 작별 인사 없이 오후 10시 6분, 공연이 마무리됐다.



◇ 간소했던 무대 안팎

모든 것은 간소했다. 콘서트장에 으레 있기 마련인 대형 스크린도 없었다. 무대 위의 밥 딜런은 손톱만 한 크기로 보였다. 공연주최사 파파스이앤엠이 관객 편의를 위해 화면을 달자고 설득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무대에 집중해주길 바라는 밥 딜런 뜻이 반영된 듯했다. 그는 2010년 3월 첫 내한공연 때도 스크린 설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연장 내 사진촬영도 금지됐다.

공연 전후로 기자회견이나 공개 행사도 없었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한국 팬들과 만나는 자리여서 세간의 관심이 쏠렸지만, 프로모션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대신 까다로운 요구는 없었다. 그는 대기실에 한국식 불고기 국수와 와인 세 병, 재떨이만 준비해달라고 했다. 재떨이와 관련, "한국에선 모든 공연장이 금연구역"이라고 공연기획사가 양해를 구하자 흔쾌히 수긍했다고 한다.



◇ 여유 있었던 공연장…외국인 관객 많아

7천석 규모 공연장은 꽉 차진 않았다. 중장년층과 외국인 관객이 주를 이뤘다. 3층 좌석 군데군데 검은 천을 덮은 채 비워뒀다. 티켓이 매진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가수 명성에 견줘 상대적으로 국내 팬층이 얇은 탓이다. 1962년 데뷔한 밥 딜런 히트곡은 대부분 1960∼1970년대 발표됐다. 대표곡 '블로잉 인 더 윈드'가 수록된 2집이 나온 게 1963년, 무려 55년 전이다.

당시 미디어 환경에서 해외 음악이 바로 소개되기도 어려웠지만, 경직된 사회 분위기도 음악 문화 성숙을 막았다. 1975년 유신정권 때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저항, 반전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블로잉 인 더 윈드'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밥 딜런과 동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1940∼1950년대생이 그의 음악을 접하기는 어려웠던 셈이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밥 딜런의 음악은 사실상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음악은 가수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이 향유해야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한국엔 그런 팬층이 두껍게 형성되지 못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한국 공연을 시작으로 아시아 투어에 돌입한다. 29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오른 뒤 대만,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지로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날 공연은 올해 밥 딜런에게 예정된 42개 무대 중 27번째라고 그의 움직임을 꼼꼼히 기록하는 웹사이트 밥링크스(Boblinks.com)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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