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지지 필요"…말레이 전 총리, 총선 직전 CIA에 비밀편지 논란

입력 2018-07-27 12:37
"美지지 필요"…말레이 전 총리, 총선 직전 CIA에 비밀편지 논란

정적 마하티르를 '반서방·반유대주의자'로 규정하며 지지 요청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부정부패 논란 끝에 총선에서 참패해 권좌에서 밀려난 말레이시아 전임 총리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미국에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비밀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총리부는 산하 정보부서를 통해 지난 5월 4일 지나 해스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서신을 발송했다.

당국은 관련 내용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일부 매체가 입수해 공개한 사본에는 같은 달 9일 치러질 총선에서 여야 간 의석이 좁혀지더라도 당시 재직 중인 나집 라작 총리를 지지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사본에는 "미국이 나집 총리와 그의 정부를 계속 지지할 것이란 암시가 주어지면 (말레이시아의 정치적) 안정성이 강화되고, 양국 관계가 증진될 것"이라면서 관련 내용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해 달라는 내용이 적혔다.

당시 야권 총리 후보였던 마하티르 모하맛 신임 총리(93)는 미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는 인물로 묘사됐다.



서신은 "마하티르는 과거 반(反) 서방, 반(反) 유대주의 성향의 독재자로 인권과 법치를 완전히 무시했던 인물"이라면서 "반면 나집 총리는 미국의 강한 동맹으로 알려졌고, (동남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유지를 지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집 총리가 없다면 미국은 동남아에서 믿을 만한 동반자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필리핀은 이미 워싱턴과 거리를 벌렸고,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너무 작은 국가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국내 정치문제에 몰입해 있고 베트남을 제외한 인도차이나 국가는 너무 중국에 기울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나집 전 총리가 이끌던 기존 여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이번 총선에서 참패해 61년간 이어진 장기집권의 막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나집 전 총리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의 부정부패와 민생악화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일시에 표출됐다고 보고 있다.

나집 전 총리는 CIA에 보냈다는 서신의 진위를 묻는 말에 "그것은 확인도 부정도 해 줄 수 없는 기관 간 문제로 나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2009∼2015년 45억 달러(약 5조 원)의 공적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 온 그는 이달 초 배임과 반부패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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