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환갑 넘어 3번째 해외봉사 떠나는 신영진 씨
보건교사로 9월 미얀마행…"봉사는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힘"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신영진(여·63) 씨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9월 초 다시 미얀마로 해외봉사를 떠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캄보디아(2011∼2013년), 미얀마(2014∼2016년)에서 두 차례 구슬땀을 흘렸던 그다.
지난 18일부터 KOICA 월드프렌즈 영월교육원에서 파견에 앞서 국내 교육을 받는 신 씨는 27일 연합뉴스와 이메일 및 전화통화에서 "봉사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힘이고, 순간마다 나를 지켜보게 하는 수행의 도구이며,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라며 운을 뗐다.
3번째 봉사를 나가는 이유를 묻자 '봉사 예찬론'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봉사를 하면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고 할 일이 있어 좋아요. 기회가 늘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음이 움직일 때 손과 발을 함께 쓰면 기적이 생길 것입니다."
봉사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불효를 했다. 캄보디아로 첫 활동을 나갈 때 어머니는 "가지 마라. 더는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만류했지만 그냥 흘려듣고 떠났다. 어머니는 1년 정도 살다 세상과 이별했다.
신 씨는 "당시에는 가슴 아팠지만 지금은 보살필 가족을 더는 만들지 않고, 홀가분하게 봉사할 수 있어 참 잘한 일이라 저에게 칭찬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봉사를 택한 계기는 2007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다큐멘터리 '네팔의 돌 깨는 아이들'을 본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없이 울다가 '퇴직하면 해외봉사를 가자'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신 씨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군통합병원(1978∼1986년)에서 간호장교로 복무했다. 이후 동국대 경주병원에서 근무하다 KOICA를 통해 해외봉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한 뒤 합격 여부도 알기 전에 사표부터 썼다.
"캄보디아 시골 초등학교 보건교사 활동하면서 30년간의 간호사 생활이 비로소 꽃피는 것 같았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서보니 큰 세상이 보였죠. 대한민국은 아주 큰 백그라운드가 되어 저를 지지했고, KOICA는 제게 맘껏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줬어요. 그곳은 행복한 인생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신 씨는 캄보디아어를 한국어로 바꾼 '간호 용어 사전'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선배 기수가 작업하던 것을 그가 부임해 완간한 책이다.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그의 일상은 "재미없고 구태의연"했다. 인생의 방향은 이미 바뀌었고,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KOICA 문을 두드렸다.
미얀마 사회복지부의 유아교육개발센터에서 보건교사로 활동한 그는 '책 한권으로 진료'라는 제목의 한국어 의학용어 사전을 제작했다. 간호 단원뿐만 아니라 일반 단원들이 현지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주말에는 시골 마을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봉사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깨달은 그는 두 번째 찾아온 미얀마행에 벌써 행복감이 가득 밀려온다고 좋아했다. 미얀마 전통문화는 보전하면서 보건·위생 분야를 개선하고 싶다는 자그마한 소망도 이루고 싶단다.
그는 미얀마에서 만났던 교사가 '활동이 끝나면 그 나라에 뼈를 묻으라'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진짜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로 이번에 미얀마에 갈 것"이라는 그는 봉사활동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꾼 자신이 참 좋다며 행복해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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