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고문, 이탈리아 '공공장소 십자가 의무화' 강력 비판

입력 2018-07-27 10:12
교황 고문, 이탈리아 '공공장소 십자가 의무화' 강력 비판

정치적 이용 지적…"내무장관, 십자가로 이민·무슬림 반감 부채질"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문이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이 추진하는 공공장소 십자가 게시 의무화 방안을 강력히 비판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6일(현지시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문으로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가톨릭 잡지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이기도 한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전날 트위터에 십자가는 정치적 상징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정치인들은 십자가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했다.

그는 "십자가는 죄악, 폭력, 불의, 죽음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라면서 "십자가는 결코 동질감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원수에 대한 사랑, 무조건적인 포용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반(反) 난민, 반(反) 이슬람을 표방하는 극우정당 '동맹'은 항구, 학교, 대사관, 교도소를 비롯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십자가 게시를 의무화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최대 1천 유로(약 131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최근 의회에 제출했다.

'동맹'은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특히 이번에는 이 정당의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 겸 부총리가 이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살비니 장관은 지난 3월 실시된 총선에서 반이민, 반이슬람 구호를 앞세워 17.4%의 표를 얻는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이후 약 33%를 득표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연정을 구성,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를 출범시키며 정권의 중심축이 됐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선거 공약이던 강경 난민 정책을 즉각 실행에 옮기며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던 난민 문제를 다시 EU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했다.

'동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 사이에서 지지세가 강한 정당으로, 살비니 장관은 공개 연설에서 묵주를 들어 보이는 등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종교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이탈리아는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을 품고 있어 가톨릭의 영향력이 비교적 큰 사회이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약 3분의 2가량이 난민들에게 항구를 닫은 살비니의 강경 난민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자신의 교회에 인종차별주의자의 출입을 금지했다가 살비니 장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잔프랑코 포르멘톤 신부는 가디언에 살비니 장관은 "십자가를 이용해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스파다로는 그것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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