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반군이 쏜 미사일에 홍해로 번진 사우디-이란 패권 대결
사우디, 예멘 공격 강화 예고…이란, 원유수송 봉쇄 실행 경고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예멘 반군 후티(자칭 안사룰라)가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에 쏜 미사일 한 발로 중동의 두 강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 경쟁이 홍해로 번졌다.
친이란 예멘 반군이 25일(현지시간) 홍해의 입구 바브 알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사우디의 초대형 유조선 2척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사우디는 이를 '테러 행위'로 규정, 홍해 상 원유 수송을 잠정 중단한다면서 강력한 군사 작전을 예고했다.
사우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영방송 알아라비야는 26일 "후티의 바브 알만데브 해협 공격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과 연결됐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예멘 반군의 유조선 공격이 미국의 제재 복원에 맞서 이란이 걸프 해역의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고 위협한 가운데 나온 만큼 이란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멘 반군이 이 해협을 항해하는 사우디 유조선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멘 반군은 바브 알만데브 해협의 유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종종 위협했고, 올해 4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사우디는 경고에 그쳤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번엔 원유 수송을 잠정 중단한다는 초강수를 꺼냈다. 사우디 원유 정책의 공식 기조가 유가 안정임을 고려할 때 예상을 넘는 강경한 대응이다.
이번 유조선 공격의 의미와 파장을 극대화해 예멘 반군을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사우디의 '작심'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우디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예멘 반군은 자유로운 민간 선박의 항해를 방해했다"면서 "호데이다 항이 여전히 테러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함께 아랍동맹군의 주축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안와르 가르가시 외교담당 국무장관도 26일 "유조선을 공격한 반군의 행태에서 왜 우리가 호데이다를 탈환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호데이다는 바브 알만데브 해협과 맞닿은 예멘의 항구도시로, 반군이 점령한 물류 요충지다. 이 항구를 통해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식량과 구호품이 들어오지만 사우디는 이곳으로 이란이 예멘 반군에 무기를 밀반입한다고 주장한다.
아랍동맹군은 지난달 13일 호데이다 탈환 작전을 개시했으나 외곽만 장악했을 뿐 한 달 넘게 도심으로는 진격하지 못했다.
현재 유엔이 반군 지도부를 만나 예멘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호데이다를 유엔 감독하에 두는 중재안을 협상 중이다.
사우디는 이번 민간 유조선 공격의 원점을 호데이다로 지목함으로써 유엔의 중재 결과에 관계없이 군사 작전으로 자신의 통제하에 둘 명분을 얻게 됐다.
호데이다를 사우디가 점령하면 전세는 예멘 반군에 매우 불리해지고, 이란의 영향력도 비로소 끊을 수 있다는 게 사우디의 계산이다.
미국의 제재를 열흘 앞둔 이란 역시 이번 유조선 공격을 정치·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란 군부의 최고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26일 "홍해도 이제는 안전하지 않다"면서 "그들(미국, 사우디)은 이란의 비대칭 전투력(전면전이 아닌 기습공격, 게릴라전, 침투로 적을 공격하는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 반군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모호한 화법으로 언급함으로써 호르무즈 해협도 홍해 입구처럼 유조선과 상선의 항해를 기습 작전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 셈이다.
이와 맞물려 최근 예멘 반군이 사우디의 석유 시설로 표적을 옮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18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정유시설을 무인기로 공격해 불이 났다고 주장했다.
사우디군과 비교해 무기와 장비가 현격하게 떨어지지만, 이란의 그림자가 드리운 예멘 반군은 사우디의 핵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을 보유했음을 과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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