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불 참사는 혹독한 긴축 정책 결과"
"공공지출 삭감으로 위기대응 시스템 부실화…비극 불러"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 아테네 인근 해안 휴양지를 덮친 산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80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번 산불이 최악의 피해를 낸 것은 지난 8년간 이어진 혹독한 긴축정책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국제채권단이 제시한 재정흑자 목표를 맞추느라 공공서비스 지출을 대폭 삭감한 결과가 엄청난 비극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2010년 이래,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2천750억 유로(약 363조6천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 살림을 꾸리고 있다. 그 대가로 공공지출 삭감과 공기업 민영화 등 강도 높은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펼치며 허리띠를 졸라매어 왔다.
그리스 산림 전문가인 니코스 보카리스는 25일 AFP통신에 2010년 채무위기 이후 그리스가 시행하고 있는 긴축조치가 화재 등 위기 대처 시스템에 대한 방치로 이어져 이번 산불의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번 산불이 시속 100㎞가 넘는 강풍과 오래된 소나무 숲 한가운데 지어진 주택들, 취약한 진입로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돼 속수무책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재원 부족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이 부실해진 것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리스 소방 부문의 예산은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인 2009년 4억5천200만 유로(약 6천억원)에서 작년에는 3억5천400만 유로(약 5천억원)로 1억 유로 가까이 급감했다.
예산 삭감은 화재 진화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귀결됐다.
그리스 노동단체에 따르면 정부는 2011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정규직 소방관 4천 명을 감원했으나, 아직도 이 인원을 보충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소방관들은 소방 트럭이 너무 낡은 데다 정비 불량으로 동원할 수 없는 소방차도 많아 화재 발생 시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음을 호소해왔다고 미국 CNBC 방송은 보도했다.
CNBC는 "그리스는 2016년 이래 독일과 비슷한 규모의 재정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나 공공부문 투자 축소로 공공서비스 수준 저하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그리스가 8년 동안 긴축정책을 펴며 기간 시설과 장비 등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한 것이 이번 산불 참사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CNBC에 따르면 IMF마저 2016년 보고서에서 공공부문의 정부 지출 삭감은 공공서비스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그리스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스 사회주의 노동자 단체도 "이번 산불 참사는 채권단과 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사회적 요구를 무시한 채 긴축에 굴복한 결과"라며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