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백신' 제약사는 벌금형…'우량 백신' 구해준 의사는 7년형

입력 2018-07-25 18:25
'불량 백신' 제약사는 벌금형…'우량 백신' 구해준 의사는 7년형

자국 제약기업 키우고자 해외 백신 수입 막다가 '백신 스캔들' 초래

중국 부모들 자녀 백신 접종 위해 홍콩 몰려들어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수십만 개의 불량 백신이 유통돼 영유아에게 접종된 중국 '백신 스캔들'이 확산하면서 해외 백신의 수입을 막는 중국 당국의 규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25일 홍콩 빈과일보와 동방일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의 저명 인권 변호사인 스웨이장(斯偉江)과 쉬신(徐昕)은 해외 백신을 대리 구매했다가 징역형을 받은 피의자들의 상고심 변호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성명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글로벌 제약기업 화이자가 생산하던 소아 폐렴 백신의 수입 허가를 2013년에 중단했다.

이는 중국 제약기업의 백신 생산을 장려하고자 '수입 장벽'을 쌓은 조치로 해석된다.

문제는 화이자 제품으로 자녀의 소아 폐렴 백신 1차 접종을 한 부모들이었다. 같은 화이자 백신으로 2차 접종을 해야 했지만, 구할 길이 없었다.

이에 많은 부모가 미국 교포 등에게 부탁해 해외 시장에서 화이자 백신을 구해 자녀들의 2차 소아폐렴 백신 접종을 했다.

하지만 중국 사법당국은 이들의 백신 구매를 도운 의사 등을 기소하고, '가짜 의약품'을 판매한 혐의를 적용해 의사 1명은 징역 7년형, 나머지 3명은 4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수십 명의 부모가 상하이 시 정부에 이들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권 변호사들은 성명에서 "많은 국가가 현대 의학 혜택을 받고 있지만, 중국 관료들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뇌물을 받으면서 '불량 백신'으로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뺏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불량 백신을 제조한 창성 바이오 등은 벌금형에 그쳤는데, 우량 백신을 구해준 사람들은 중형을 선고받으니 이걸 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

중국 제약기업 '창춘창성(長生)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우한생물제품연구소'는 불량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과 광견병 백신을 대량으로 판매했다가 발각되자 이를 전량 회수했다.



이들 기업이 만든 불량 백신을 접종했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영유아가 중국 전역에서 속출하지만, 두 기업 모두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

여기에는 두 기업이 가진 막강한 '배경'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오쥔팡(高俊芳) 창성바이오 회장은 지린(吉林) 성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창춘(長春) 시 인민대표대회 대표, 지린 성 예방의학회 부회장 등의 직함을 갖고 정계와 관계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했다.

우한연구소는 중국 최대의 백신 제조 기업인 중국생물기술의 자회사인데, 이들 기업은 중국 국가위생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유기업에 속한다.

정부 부처의 직속기업인 만큼, 불량 백신을 40만여 개나 유통하고도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는 얘기다.

백신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중국산 백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부모들은 홍콩으로 몰려들고 있다.

모든 백신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홍콩은 다국적 제약기업이 제조한 우량 백신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 본토인의 '홍콩 의료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쿵 사는 "22일과 23일 이틀 동안 홍콩에서 자녀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무려 3만 통 넘게 걸려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2008년 영아 3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30만 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멜라닌 분유' 등 불량 분유 사건이 잇따르자,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홍콩으로 몰려들어 '분유 사재기'에 나선 사례가 있다.

이에 홍콩 정부는 2013년 홍콩 외부로 반출할 수 있는 분유 양을 1.8㎏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에밀리 류(33) 씨는 "백신 스캔들 소식을 듣자마자 홍콩 병원에 예약했고, 23일 아이들을 홍콩으로 데려가 백신 접종을 했다"며 "홍콩이 외부인의 백신 접종을 금지했다면, 아마 일본이나 대만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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