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독 손열음 "불러주는 무대만 설 수 없어"
평창대관령음악제 30대 예술감독…"젊은 관객 늘었으면"
연주시간 쪼개 프로그램북 직접 작성…"실내악 중심 탈피"
(평창=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걱정을 많이 하다 보니 악몽까지 꿨다. 이번 축제에서 클라리넷 수석을 맡는 조인혁 씨가 갑자기 못 온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다른 연주자를 수소문해야 하는 꿈이었다.(웃음)"
25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올해 제15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수장은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32)이다. 올해 제3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그의 전임자는 첼리스트 정명화(74)·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0) 자매였고, 첫 예술감독은 바이올리니스트 강효(73)다.
약 40년 나이 차를 건너뛴 예술감독 선임은 음악계에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쏟아지는 자리에 선 손열음 역시 부담이 컸을 터.
이날 개막 공연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그는 "하루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다섯 번씩 들었다"며 "다 만들어진 무대에 연주자로 서는 것과 직접 무대를 꾸리는 것은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오늘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감이 어떤가.
▲ 믿기지 않는다. '정말 오늘이 올까' 생각했는데 정말 시작이다. 놀랍고 설레고 걱정도 많이 된다. 그래도 하나 믿는 구석은 연주들은 무조건 좋을 것이란 점. 그거 하나는 확신한다.
-- 아티스트로 참여했을 때와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이끄는 경험, 어떻게 달랐나.
▲ 같은 게 하나도 없더라. 이번에 예술감독 일을 해보면서 역으로 연주자로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깨달음도 많이 얻었다. 예를 들면 약속도 잘 지켜야 한달지.(웃음) 연주자로서 컨디션에 따라 리허설 시간을 조정하고도 싶고, 곡도 더 자신 있는 것으로 바꾸고 싶을 때도 잦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깨달았다.
-- 피아니스트로서 한창 연주가 많을 때다. 시간을 쪼개 예술감독을 맡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 불러주는 무대에 가서 피아노만 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 시장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헤쳐나가야 하고, 수백 년 전 유럽이라는 시공간을 현재 이곳으로 맞추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불러주는 무대에만 서다 보면 결국 그 무대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총합을 계속 늘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그분들도 흥미를 잃지 않는다. 시간을 잘 배치해야겠지만, 어쨌든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최연소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감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이 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 나이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사무국 측에서는 제가 프로그래밍을 맡으면서 젊은 관객들이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 음악제가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들을 보완하려고 했다.
-- 이전 축제와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 과거엔 실내악 중심 축제였지만 이번 축제에는 오케스트라를 과감하게 편성했고, 리사이틀도 많이 준비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제가 되길 바란다.
-- 프로그램 북을 보니 직접 곡해설까지 다 썼더라.
▲ 책 한 권을 거의 제가 만들었다. 제가 예술감독으로 한 일 중 가장 보람되고 힘든 일이었다. 과거 프로그램 북을 보니 전문 연주자인 제가 봐도 너무 어렵고 학구적인 내용이었다. 일반 청중분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 책 출간부터 예술감독 데뷔까지 다재다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은.
▲ 전혀 없다. 서른 전까지 전 피아노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라고 생각했었다. 그 외에 몇몇 가지 일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모두 음악과 관련된 거다. 운전도, 요리도 못 한다. 음악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할 수 있고,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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