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② 의결권 위임, 실효성 논란(종합)
"기금운용본부 독립성 제고가 우선"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위탁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민간 운용사에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에 따른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커지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증권가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본적으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운용사에 대한 의결권 위임 등 구체적인 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하고자 기금운용본부 산하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서도 여러 비판이 제기됐다.
◇ "민간 운용사, 독립적 의결권 행사 난망"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자산은 1분기 말 현재 131조원 규모다. 이 중 71조원(54%) 정도를 직접 운용하고 나머지 60조원은 민간 운용사에 위탁 운용하고 있다.
현재는 위탁 운용 주식의 의결권도 모두 국민연금이 행사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라 내년 상반기부터는 해당 의결권 행사를 위탁 운용사에 위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투자일임업자가 연기금 등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의결권 행사 위임은 위탁 운용사와 투자대상 기업의 영업상 이해관계 등 이해상충 문제를 감안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이에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자산운용사에만 의결권을 위임하거나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인프라 평가를 반영하는 방안, 또는 이해상충이 있는 경우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보완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위임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은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실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결을 미룬 26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도 국민연금의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위원들은 기업과 이해관계가 얽힌 운용사가 대부분인 점을 고려해 이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결권 행사 위임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올해 하반기부터 국민연금이 의결권 찬반 결정 내용을 주주총회 이전에 사전 공시한다는 계획 때문이다.
자본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의결권 결정 사항을 미리 공지할 경우 대부분 운용사가 여기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자산운용업계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박경종 한국투자신탁운용 컴플라이언스실장은 "국민연금과 같은 큰 기관이 찬반 의사를 미리 표시하면 의결권을 위임받은 위탁 운용사의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형 운용사는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당장 내년 상반기부터 운용사 선정 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이행 운용사에 가점을 줄 계획이다. 결국, 의결권 자문사와의 자문계약, 의결권 행사를 위한 내부 인력 확보 등 추가 비용이 걱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실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가점을 준다면 중소형 운용사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주도한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고려대 교수)은 "국민연금도 궁극적으로 일본 공적연금(GPIF)처럼 국내 주식의 100%를 위탁 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사전 공시할 의결권 결정도 없어지고 연금사회주의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7'에 따라 위탁 운용사에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한다면 자산운용사들도 의결권 자문 등 수탁자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부담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독립성·전문성 확보가 관건…"최고 목표는 연금 수익성 제고"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이유로 기금의 장기 수익 제고와 함께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과 투명성 확보를 내세운다.
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까지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이해상충 우려로 정부 인사는 배제하고 기금운용위원회 소속 기관과 단체가 추천한 민간 전문가 14명 이내로 구성한다는 복안이다.
안에 따르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중요 의결권과 기금운용본부의 주주 활동 이행 여부 등을 결정하지만 주주 활동 기준·절차 마련, 투자 제한·변경 등 정책사항은 상위 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한다.
이를 두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책임 전가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월 기금운용본부가 현대모비스[012330]의 분할·합병건에 대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결정을 위한 투자위원회 개최를 차일피일 미루며 의결권전문위원회가 스스로 사안을 다루기를 기다린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 있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 게 아니라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여주는 게 '정도(正道)'"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인사로 구성된 민간 위원회를 확대·개편하는 것은 기금운용본부를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게 만들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금운용본부의 전직 고위 인사는 "의결권전문위원회는 보조 수단일 뿐 국민연금이 일차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사안을 판단하는 게 옳다"면서 "삼성물산[028260] 합병 과정에서 초래된 불신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전문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전 전 위원장은 "의결권전문위원회에 비춰보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도 학계나 법조계 인사가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민연금에서 필요한 건 이들의 전문성보다는 실제 '필드'(시장)에서의 전문성"이라고 강조했다.
조명현 원장은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만들든, 민간 위원회를 두든, 국민연금이 100% 독립성을 갖기 힘든 게 한국의 현실"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주식 운용을 모두 민간 운용사에 위탁하면 이런 위원회는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논란에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제일 큰 목적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박경종 실장은 "장기 수익성 제고라는 목적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서 "운용의 묘를 살려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hyunmin6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