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설 지연시킨 필리핀 국회내분…아로요 前대통령 부활(종합)
50년 끈 정부군-반군 내전 끝낼 '이슬람 자치정부법' 처리 연기
두테르테 "끝나려면 아직 먼 마약과의 전쟁 가차없고 냉혹할 것"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필리핀 국회에서 의장직을 놓고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지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또 50년가량 이어진 필리핀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의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법안 처리도 연기해 빈축을 샀다.
이런 와중에 한때 부패혐의로 구금됐던 글로리아 아로요(71) 전 대통령이 하원 의장을 차지해 권력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4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하원의 권력투쟁은 전날 낮 12시 30분께 본격 시작됐다.
하원의원인 아로요 전 대통령이 의장직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한 판탈레온 알바레스 하원 의장이 일방적으로 휴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로요 측 부의장이 "의원 292명 가운데 180명 이상이 아로요 의원을 차기 의장으로 지지하는 성명에 서명했다"며 임의로 본회의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아로요 전 대통령이 의장 취임 선서를 한 뒤 의장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알바레스 의장이 "권한을 위임하지 않은 임시 국회는 무효"라며 의장직 사퇴를 거부해 대치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된 국정연설을 위해 국회 의사당을 방문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알바레스 의장과 아로요 전 대통령을 각각 만나 국정연설이 끝날 때까지 알바레스가 의장직을 맡는 것으로 설득해야 했다.
각국 외교사절과 저명인사가 참석한 국정연설이 1시간 이상 지연됐다.
또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 '방사모로' 이슬람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법안 처리가 연기됐다.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의 내전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의미가 있는 이 법안은 이날 상하원이 모두 처리하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해 입법절차를 끝낼 계획이었다.
국정연설이 끝난 후 밤늦게 정식으로 소집된 하원 본회의에서 아로요 전 대통령은 의원 과반수인 184명의 지지를 받아 필리핀 사상 첫 하원 여성 의장이자 대통령 출신 첫 하원 의장이 됐다.
아로요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2001∼2010년)에 3억6천600만 페소(약 89억 원)의 자선복권기금을 유용한 혐의로 2012년부터 4년가량 정부 병원에 구금됐다가 2016년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알바레스 전 의장의 실권은 두테르테 대통령 맏딸이자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인 사라가 주도했다고 필리핀스타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알바레스 전 의장은 최근 사라가 창당한 지역정당에 대해 저항세력이라고 말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한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급격한 물가인상 등을 비판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몰렸고, 일부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모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이 끝나려면 멀었다"면서 "시작했을 때처럼 가차 없고 냉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장 재직 때부터 암살단을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마약 용의자 유혈 소탕으로 4천여 명을 재판과정 없이 처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대중국 관계개선이 서필리핀해(필리핀이 남중국해를 부르는 명칭)에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흔들린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중국과 양자, 다자 포럼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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