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재 강조·北미사일실험장 폐기행보…협상 새판짜기 잰걸음

입력 2018-07-24 11:57
수정 2018-07-24 13:22
美제재 강조·北미사일실험장 폐기행보…협상 새판짜기 잰걸음

북미, 본격적 비핵화 협상 앞두고 교두보 선점 기싸움 양상

전문가 "북미 신경전 배경에 신고·검증 둘러싼 이견 존재"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6·12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대북체제안전보장 협상이 소강 국면을 보이는 가운데 북미 양측이 새로운 협상판을 짜기 위한 행동에 나선 양상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의 자국 기업들을 주로 겨냥한 '대북제재 주의보' 발령과, 같은 날 공개된 북한 미사일 실험장 해체 움직임은 얼핏 상반돼 보이지만 차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3일(현지시간)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 등 3개 부처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보'를 내려 북한의 불법적인 무역과 노동자 송출에 말려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위반으로 블랙리스트에 등재될 수 있는 만큼 주의하라고 경고한 데 눈길이 쏠린다.

이번 조치는 신규 대북 제재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직전 북한과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신규 제재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제재 완화는 검토할 때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들어 3차례 진행한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어느 정도 복원한 중국이 대북제재 완화 또는 제재망을 우회한 대북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도록 견제구를 던지는 측면도 엿보인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24일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기조 하에, 미측이 대북 제재는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이라며 "미국이 후속 대북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책임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자국 내에서 북핵 협상을 둘러싼 비판은 물론 회의론까지 나오자 비핵화때까지 제재가 유지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대내 메시지 차원에서 이런 조처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자국내에서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재 관련 사항을 발표하는데 대북 협상을 주관하는 국무부가 공동 발표자로 참여한데는 '소득없이 북한에 양보하고 있다'는 자국내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곧 파괴하겠다'고 약속한 장소로 알려진 평북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과 관련한 주목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미국의 대북 전문 매체 '38노스'가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세워진 '타워 크레인'을 부분 해체한 정황이 식별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6∼7일 방북 협의 직후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자신들이 종전선언과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해 '대출력발동기시험장을 폐기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미국이 '강도적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며 비난한 바 있다.

그랬던 북한이 동창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대북 안전보장 및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카드를 뽑는데 신중한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북미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이 약속한 비핵화 관련 조치를 자발적으로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양면적 행보로 풀이된다.

상호 연관성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북미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어느 쪽도 협상 판을 깨려는 생각은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양측 다 자신들이 유리한 구도로 협상판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쪽에 전문가들은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비핵화 로드맵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대북 제재망이 느슨해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대북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 레버리지로 여기는 제재의 날을 세워야 한다는 인식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북한으로서는 이미 천명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에 맞서 먼저 행동에 나섬으로써 미국 등을 압박해 조기 종전선언을 이루려고 미사일 실험장 해체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북미간의 최근 움직임 이면에는 북핵 신고와 검증을 둘러싼 이견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비핵화 관련 일방적 조치는 계속하면서도 신고와 검증 문제에서 핵탄두, ICBM 등은 초기단계에 신고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는 양상인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신고와 검증에서 북한이 이탈하지 못하게 하려면 대북제재 관련 공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결국 핵 신고와 검증 문제에서 합의가 돼야 비핵화 프로세스가 본격화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둘러싼 미북 신경전이 전개되는 양상"이라고 부연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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