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 치밀 기무사 계엄 세부계획…국회의장 권한제한도 시도

입력 2018-07-23 22:55
수정 2018-07-23 23:40
입체적 치밀 기무사 계엄 세부계획…국회의장 권한제한도 시도



계엄 실행에 '무게'…계엄해제 집회 참여 국회의원 구속계획도

134명 규모 계엄사 보도검열단 구성…언론사 별 요원 배치까지

주한 외국 대사 상대 외교전도 계획…美 대사는 국방장관이 설득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한지훈 기자 = 23일 공개된 67쪽짜리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관련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입체적으로 치밀한 계획을 담고 있어 실행 의도를 가지고 작성된 문건이라는 의혹을 짙게 한다.

우선 국회의 계엄해제 시도에 대비해 당시 야당 소속인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시도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해 계엄해제 표결을 위한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아울러 계엄사 보도검열단을 구성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는 한편, 유언비어 등의 유포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폐지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또 계엄령 선포 이후 계엄 시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한 외국 대사와 기자 등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벌이고 특히 국방부 장관은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 본국에 한국의 계엄 시행을 인정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가 작년 3월 촛불집회 당시 작성한 이 문건은 국회 국방위원회 여야 4당 간사가 합의해 안규백 국방위원장이 국방부에 제출을 요청한 자료로, 이날 오후 8시 40분께 국회로 전달됐다.

당초 이 문건은 2급 군사기밀이었지만,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의 제출 요구에 따라 긴급회의를 개최해 기밀을 해제했다.

◇ 기무사, 정세균 전 의장까지 손대려 했나

기무사는 국회의 헌법상 계엄해제 권한을 무력화하기 위해 야당 국회의원들을 무더기로 체포·구속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국회의장의 권한에까지 손대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는 우선 여당인 당시 새누리당을 통해 계엄의 필요성과 최단 기간 내 해제 약속을 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유도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당정 협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문건 작성 당시 국회의장은 정세균 전 의장으로, 기무사는 정 전 의장을 따로 설득하거나 최악에는 다른 야당 의원들과 함께 사법처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는 이와 함께 국민 기본권을 매우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헌법 37조와 77조를 근거로 비상계엄 시 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해 체포, 구금, 압수,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자유를 일체 제한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기무사는 또 정부 부처별로 5급 이상 공무원을 2명 이상 계엄사로 소집해 연락관을 맡기고, 계엄사 통제에 불응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방식으로 각 부처를 장악하는 통제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는 계엄사의 원활한 정부 부처 지휘와 감독, 업무 협조로 정상적인 계엄시행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강압적인 명분을 내세웠다.

◇ 치밀한 보도검열에 인터넷 포털·SNS 계정 폐지까지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에는 세부적인 계엄사 보도검열단 편성계획이 담겨 있다.

방송반과 신문반, 통신반 등 9개 반으로 구성되는 보도검열단에는 계엄사 48명, 문화관광체육부 61명, 방송통신위원회 16명, 합동수사본부 6명 등 134명이 참여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방송과 신문, 통신에는 매체별 통제요원을 운용한다고 명시했다. 방송 22개와 신문 26개, 통신 8개 등 중앙매체는 계엄사 보도검열 조직이, 방송 32개와 신문 14개 등 지역 매체는 지역 계엄사에서 통제하도록 했다.

계엄에 유해하고 공공질서를 위협하며, 군의 사기를 저하하는 등의 보도는 금지하고, 정부와 군의 발표를 비롯해 반정부 의식을 불식하고 시위대의 사기를 저하하는 내용은 확대 보도하도록 한다는 보도검열 지침도 하달하도록 했다.

보도검열 지침을 위반한 매체는 1차로 경고하고, 2차로 위반하면 기자실 출입금지 및 보도증 회수 등의 조치를 취하고, 3차 때는 형사처벌한다는 처벌계획도 담겨 있다.

보도검열 지침을 지속해서 위반하는 매체는 등록을 취소하고 보도정지 조처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인터넷 포털 및 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를 위한 방안도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담겼다.

계엄선포 후 포고문에 인터넷 및 SNS를 통해서 집회와 단체행동을 선동하거나 유언비어를 날조 및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선포하고, 방통위에 민·관·군 합동으로 '인터넷유언비어대응반'을 설치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불온내용을 신속하게 차단하도록 했다.

유언비어 등을 유포하는 인터넷 포털 및 SNS 계정은 계엄법 9조에 의거 방통위에서 계정을 폐지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 군사 쿠데타 세력의 전형적인 정당성 확보 조치

기무사는 계엄선포 전후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무관과 기자 등을 상대로 치밀한 외교 활동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했다.

우선 계엄선포 전에는 국방부 장관이 주한 외국 무관단을 소집해 국내 소요 사태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입장을 전하고 동요 방지를 당부하는 한편, 일부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차단하고자 했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 주한 미국·중국 대사를 공관으로 초청, 비밀리에 계엄의 불가피성에 관해 설명하는 절차도 밟도록 했다.

계엄 선포 이후에는 다시 국방부 장관이 주한 미국 대사를 초청해 미국 본국에 한국의 계엄시행을 인정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외교부 장관도 주요 외국 기자와 기업인을 초청해 지지를 요청할 계획을 세웠다.

외국 공관 주변 경계를 강화해 주한 외교관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외국어로 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는 과거 한국의 군사 쿠데타 세력이 반란 후 취약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했던 대외적 조처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밖에 기무사는 일반 시민이 총기와 폭발물을 탈취할 것에 대비해 총포사, 화약류 제조업체, 사격장 등을 일제히 폐쇄하고, 폭발물 저장·제조 시설을 위험 시설로 지정해 접근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온 '촛불 시민'이 '폭도'로 돌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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