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 국정과제 채택에도 '생명의전화'는 민간 몫

입력 2018-07-22 08:01
자살예방 국정과제 채택에도 '생명의전화'는 민간 몫

경남서 운영비 대부분 후원에 의존…자원봉사자엔 차비도 못 줘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경남 김해에 사무실을 둔 경남생명의전화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께 퇴근한다.

최근 1명이 충원돼 그나마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

경남생명의전화 김은경 차장은 "최근 직원을 충원할 때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다'고 말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살예방을 주 업무로 25년째 일을 해오며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정작 직원들은 사비를 쓴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지만 경남생명의전화 직원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청소년에서 노인까지 자살 등 위기자 전화상담은 물론 인권문제·법률상담에다 자살유가족 지원, 좋은 부모 되기 운동, 청소년유해환경감시까지 일일이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다 보니 전문상담, 사무실 관리, 출장상담, 위기자 발생 때 출동 등 어느 일이 먼저랄 수 없을 정도로 겹치고 밀리기 일쑤다.

김해시에 따르면 경남생명의전화 상담실적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만2천417건이다. 하루 46건, 한 달이면 1천380건이다.

문제는 김해에서 출발해 경남 전역으로 확대해 25년간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일 가짓수도 늘고 비결도 많이 쌓이고, 지원요청 전화도 많아졌지만, 사업비는 대부분 후원금에 의존해오고 있다는 데 있다.

올해 기준으로 경남생명의전화 소요 경비는 인건비와 사업비 포함 3억원가량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예산지원을 받는 금액은 5천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2억5천만원은 자체적으로 개인이나 기업, 병원 등의 후원으로 마련한다.

예산지원은 김해시에서 4천만원, 경남도에서 상담실 운영홍보비 명목의 500만원에 그친다.

국비 지원은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 출신인 이진규 이사장과 김병식 원장은 무보수로 일한다.

하선주 소장도 생명의 전화에서 일하다 김해시에서 지원하는 노인통합지원센터로 옮겼지만, 여전히 양쪽 일을 보고 있어 생명의 전화 입장에선 무보수로 일을 시키는 셈이다.

"죽고 싶다"는 전화가 매일 걸려 오고 그 전에 자살위기를 겪은 사람들을 지속해서 관리하고, 각종 상담을 받느라 자원봉사자가 매일 4명씩 4교대로 투입된다.

한 달에 연인원 120명이 필요한 셈이다.

이들이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고민을 상담하고 경우에 따라선 생명을 건지는 일을 하지만 모두 무보수로 뛴다.

법인에 돈이 없다 보니 이들에겐 차비도 못 준다. 상담실에 라면과 커피를 사주는 게 전부다.

상담을 벌이다 긴급 상황이 발생해 출동해야 할 경우 대부분 직원이 나간다. 상황이 긴급하면 법인 차량이나 법인 카드를 이용하지도 못해 사비를 지출하기도 한다.

급히 신경정신과 계통 병원에 상담자를 입원시키는 경우 사비를 털어야 하는 때도 있다.

경남생명의전화는 올해부터 부족한 사업비 중에서도 1억원은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전액 투입하기로 했다.

'자살 1위 국가' 불명예를 벗으려면 청소년 단계부터 예방에 들어가야 10년쯤 뒤엔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후원금은 대부분 교회 등 종교단체와 기업, 개인 등 400여명(곳)이 보내온다.

지역 내 한솔재활요양병원, 동남병원, 마더스병원 등 병원과 후원회장을 맡은 ㈜부경 김찬모 회장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경남생명의전화 관계자는 "자살예방이 국정과제에 포함되고 지자체에도 상담센터가 생긴 것은 바람직하지만, 민간과 역할이 서로 다른 것도 많다"며 "상담실을 운영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기본적 지원과 위기자 발생 때 핫라인 가동 등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b94051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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