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65년]② 사라진 '쳐부수자 XXX' 구호…최전방에도 평화 기류
대북·대남방송 시설 철거 후 '고요'…"평화통일 꿈꾸게 돼"
(파주·연천·철원=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4·27 판문점 선언이 체결된 지 약 3달이 지나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돌아본 첫 느낌은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경쟁적으로 울려 퍼지던 대북·대남방송이 사라진 자리엔 새들의 지저귐과 작전병들의 낮은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남북 정상이 만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자마자 남북은 신속하게 확성기 시설을 철거했다.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남북의 화해 무드에 따라 적대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최전방이 달라지고 있다.
최전방부대의 안내장교들은 하나같이 "현장에서 아직 바뀐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곳곳에서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철원 3사단(백골부대)의 '대적(對敵)관 구호'가 사라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가수 권지용(지드래곤)이 입대한 부대로 더 알려졌지만 백골부대는 예전부터 군기가 강한 부대로 명성이 높았다.
한국전쟁 당시 휴전선을 최초로 돌파한 역사를 부대의 자랑으로 내세웠으며,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는 등의 살벌한 구호와 백골 부대마크로도 유명했다.
백골부대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를 겨냥한 과격한 대적관 구호를 만들어 전 장병들이 제창해왔다.
백골부대의 대적관 구호는 2012년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구시대적인 구호'라는 지적을 받았으며, 그에 앞서 북한에서 '의도적 도발'이라며 군사적 보복 조치 위협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때도 꿈쩍 않던 백골부대가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하루아침에 대적관 구호를 없앤 것이다.
일부 부대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암시할 수 있는 '적'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해 남북 경색 국면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은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의 태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비쳐졌다.
최전방부대에서 만난 병사들은 판문점 선언 이후 느낀 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름대로 솔직히 답변을 했다.
3사단 성기현(22) 상병은 "판문점 선언 전까지는 병사들이 통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아무래도 작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보면 남북 정상이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어 병사들도 마음속으로 통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 상병은 이어서 "입대 전에는 북한의 도발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상회담을 보면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파주 1사단 곽현근(20) 병장은 "내 군 생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체감되는 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이 근처에서 열려 주의 깊게 보긴 했다"면서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하면 평화가 오지 않을까, 평화적으로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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