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부터 형량 거래까지…'사법 농단' 스캔들에 들끓는 페루

입력 2018-07-20 07:10
승진부터 형량 거래까지…'사법 농단' 스캔들에 들끓는 페루

부패 판사들, 전화녹취·동영상 폭로돼…법무장관 경질·대법원장 사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페루가 '사법 농단' 스캔들에 들썩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엘 코메르시오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두베를리 로드리게스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사법부의 위기'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사법부의 위기는 최근 승진부터 감형에 이르기까지 판사들의 부끄러운 이면 거래가 담긴 전화 녹음과 동영상이 현지언론에 공개되면서 비롯됐다.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 매체인 IDL 레포르테로스와 뉴스 분석 TV 프로그램인 '파노라마'는 2주 전 뇌물을 빌미로 한 판사들과 기업인 등의 이면 거래를 여실히 보여주는 전화녹취와 몰래카메라 영상을 공개했다.

대표적으로 세사르 이노스트로사 판사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11세 소녀를 성폭행한 범인에 대한 형량을 거래하기도 했다.

이노스트로사 판사는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나이와 함께 그녀가 순결을 잃었는지를 물은 뒤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뭐요? 형량 감경 아니면 무죄 판결이냐"고 질문했다는 것이다.

폭로된 다른 녹취록과 동영상에서도 판사들의 승진과 검사 임명을 관할하는 국가판사위원회(CNM) 인사들이 뒷돈을 받고 능력과 무관하게 일부 판검사의 승진을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CNM 일부 위원은 검찰 고위직 승진 대상자에 대한 면접에서 페루 전통요리인 오리 세비체를 준비하는 방법을 묻는 등 특정 인사의 승진을 대놓고 지원했다.

국민적 공분이 거세지자 CNM 위원 7명 중 부패와 연관된 3명을 포함한 6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급기야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은 지난주에 살바도르 에레시 법무부 장관을 경질했다. 부패에 연루된 한 대법관은 체포됐으며 다른 대법관은 자격이 정지되기도 했다.

페루에서는 부패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직 대통령 4명 중 3명이 중남미 최대 부패 스캔들인 오데브레시 사건에 연루될 정도다.

지난 3월 우파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은 각료로 재직하던 시절 자신의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를 통해 브라질 건설 기업 오데브레시가 제공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폭로돼 탄핵이 확실시되자 스스로 사임한 바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페루 국민의 80%는 자국의 사법정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페루 국민과 시민단체 등은 이날 저녁 수도 리마에서 사법정의와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개최할 예정이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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