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조형물 선정사업 '허점'…심사위원 명단 유출 방지책 시급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작가와 브로커가 강원 강릉시 공무원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이용해 부정하게 10억원 규모의 공공 조형물 설치사업을 따낸 것과 관련해 심사위원 명단 등이 사전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춘천지검 강릉지청은 강릉시가 지난해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발주한 '강릉역 상징 조형물 현상 공모'와 관련해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심사 계획을 입수하고, 심사위원들에게 청탁해 당선금 명목으로 10억원을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조형물 작가 A(49· 서울)씨와 브로커 B(58·건축사·전 강원도의원)씨를 최근 구속했다.
또 한국철도시설공단 간부로 재직 중 B씨로부터 자신들의 작품에 최고점을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C(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10억원 규모의 상징 조형물 설치사업을 공모해 따낼 수 있었던 것은 담당 공무원 편의에 따라 사업이 추진되고, 심사위원 관련 정보까지 빼낼 수 있는 허점 때문이었다.
강릉시는 심사위원 11명의 평가로 최고 점수를 획득한 응모작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
심사위원 11명은 건축, 디자인 분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예술 전문가 6인, 사업을 추진한 시청 공무원과 한국철도시설공단 간부 등 비전문가 5명으로 구성했다.
예술 전문가 심사위원 6명은 공개 모집이 아니라 시가 특정 대학에 심사위원을 요청해 예비 심사위원 15명을 모집하고 이 가운데 추첨을 통해 최종 6명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A씨와 B씨는 강릉시 공무원으로부터 이 같은 심사위원 구성 계획과 심사위원 요청 공문을 보낸 대학교 명단을 입수해 해당 교수들에게 심사위원으로 신청하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계획대로 전화를 받은 교수 11명은 모두 예비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
B씨는 C씨 등 비전문가 심사위원 2명에게도 접근해 A씨의 작품에 최고점을 달라고 부탁하고, C씨에게는 현금 500만원을 제공했다.
최종 심사위원 11명 중 A씨와 B씨가 포섭한 7명이 결국 심사위원에 선정됐고, 이들은 미리 청탁받은 대로 A씨의 작품 '태양을 품은 강릉'에 높은 점수를 줬다.
검찰 조사 결과 A씨와 B씨는 당선금 10억원 중 4억원만 조형물 제작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수익금을 챙겼지만, 시에는 9억원을 투입해 수익은 9천만원 상당이라고 거짓 신고했다.
검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공 조형물 설치사업 전반을 규율하는 근거 법령이 없다 보니 이처럼 해당 공무원 편의에 따라 사업 계획이 세워지고, 사업자 선정이 공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사후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정보를 빼내고 심사위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교수를 대상으로 로비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되는 악습은 다른 작가의 당선 기회를 봉쇄하고, 저질 조형물을 양산하는 만큼 그 해악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시의 공공 조형물 공모에는 28개 작품이 응모했었다.
아울러 심사위원 명단 등의 정보가 사전 유출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작가들이 심사위원에게 접근해 로비하는 관행을 원천 봉쇄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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