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샹젤리제거리에 나부낀 욱일기…재불 한인사회 '분노'

입력 2018-07-17 21:17
파리 샹젤리제거리에 나부낀 욱일기…재불 한인사회 '분노'

프랑스 정부, 14일 대혁명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자위대 초청

욱일문양 들어간 자위대기 휘날려…마크롱은 엘리제궁 초청해 기념사진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파리의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서 일본 자위대가 전범기인 욱일기를 들고 행진해 프랑스 거주 한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자위대는 프랑스 정부가 지난 14일(현지시간) 최대 국경일인 대혁명 기념일에 샹젤리제에서 연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에 일장기와 함께 육상자위대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자위대는 프랑스와 일본의 수교 160주년을 맞아 프랑스 국방부의 초청으로 소수의 의장대 병력을 파견했고 이들은 전범기인 욱일기를 변형한 육상자위대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욱일기는 일장기의 붉은 태양 주위에 욱광(旭光·아침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붙여 형상화한 일본의 군기(軍旗)다.

태양 주위로 16개의 햇살이 퍼지는 문양이 일반적인 형태로, 현재 육상자위대가 상징물로 사용하는 깃발은 욱광이 8개로 변형된 형태다.

욱일기는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되며, 그 자체로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을 당했던 프랑스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나치의 문양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으나, 욱일 문양이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인식은 매우 희박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욱일기를 휘날린 자위대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엘리제 궁에 초청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이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일본과 우방관계인 프랑스가 자위대를 군사퍼레이드에 초청한 것은 외교 관계상 이해할 수 있어도, 욱일기를 들고 행진하도록 한 것은 일본의 전범 피해를 당한 한국 등 다른 우방국들에 대해 무신경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공화국의 이념을 대대적으로 기리는 이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변형한 깃발이 파리 한복판에 휘날린 것에 대해 프랑스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상무 재불 한인회장은 "일본 군인들이 자신들의 만행을 합리화하듯이 샹젤리제 거리를 욱일기를 들고 걸었다. 프랑스 혁명기념일에 일본인들에게 정치적 선전장을 만들어 준 프랑스 정부에 한국 정부가 즉각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파리에서는 군함과 전투기 미니어처 등을 파는 한 완구상점이 간판에 칼을 든 사무라이와 욱일 문양을 넣은 것에 대해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간판 교체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욱일 문양에 대한 한국인과 재외동포 사회의 깊은 문제의식과 유럽 국가들의 무신경함이 크게 대비된다.

한국 정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일본 자위대가 욱일기를 들고 행진한 것을 인지했지만 '대응 검토' 외에 움직임은 사실상 없다.

한 외교 소식통은 "관련 내용을 파악해 본부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프랑스 간의 문제가 아닌 데다가, 문제의 깃발이 일본 육상자위대의 공식기라는 이유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처도 하지 못하고 여론의 추이만 숨죽여 살피는 기류다.

이에 따라 차제에 프랑스 등 유럽과 세계 각국을 상대로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인 일본이 욱일 문양을 나치 독일처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집중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민간과 함께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프랑스에서는 일본 관련 행사에 욱일기가 흔히 사용되는데 볼 때마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왜 우리 정부는 가만히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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