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국경제 위태롭다…해법은 산업정책과 복지확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불온도서 지정 10주년 특별판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10년 후에 와서 또 비슷한 소리를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앞날이 캄캄한 거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정말 우리나라는 위태로운 상환이라고 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제도 도입할 거 하고 틀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납니다."
이날 간담회는 장 교수의 대표 저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2008년 국방부에 의해 불온도서로 지정된지 10주년을 맞아 출간된 특별판을 소개하고 책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장 교수는 "한국도 신자유주의와 개방의 희생자"라며 당면한 경제 위기의 뿌리가 1990년대 금융자유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9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금융자유화가 잘못되는 바람에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원인을 금융자유화가 아니라 국가주도의 개발모델에서 찾으면서 기업투자가 급감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경제 성격도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고용 안정성이 약화되고 불평등도가 높아져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기 힘든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산업정책 다 포기하고 외국 단기 투기자본에 문을 열어서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렵게 됐죠. 조선, 자동차, 전자 다 우리가 (경쟁국을) 밀어낸 건데 지금은 중국에 따라잡히고 선진국은 추격하지도 못하고 있죠. 지금은 (국내) 경기를 논할 때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입니다."
장 교수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산업정책의 부활과 획기적인 복지의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위너피킹(winner picking)은 과거 우리가 많이 했던 선별적 산업정책의 핵심이다. 주주자본주의에 따라 자기가 잘하는 것만 했다면 삼성은 여전히 청과물 회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반도체 만들어서 7년 적자 봤는데 그게 위너피킹이다. 많은 기업이 처음에 저부가가치, 저생산성으로 시작해서 최소한 서너번의 위너피킹을 해야 대기업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성장기 때처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략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이 정부 주도로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GPS, 생명공학 산업을 일으킨 것을 들었다.
장 교수는 또한 복지를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주문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도 복지가 뒷받침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데 이건 기본적인 복지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업 다니다 실직하고 나면 생계형 창업을 하다 보니,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본가가 된 거죠. 동네 자영업자에게 재벌기업과 똑같이 최저임금 하라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근본적인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실직자가 생겨 서로 착취하는 지금 같은 악순환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장 교수는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재벌기업들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솔직히 김정은 위원장과도 타협하는데 재벌하고 왜 타협을 못하겠냐"면서 "대타협은 재벌이 무얼 원하니까 무얼 주자와 같은 도식적인 게 아니라 서로 포용하면서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경제에 대해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노출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위험요인이 많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지금 세계 경기회복은 저금리와 양적팽창 등으로 억지로 돈을 퍼부어서 만든 것이다. 저점, 고점은 제대로 된 경기순환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결정하는 대로 정해진다. 또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슈가 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대해선 "미국의 관세 부과액이 엄청난 거 같지만, 중국의 전체 수출량에 비하면 비중이 크지 않다"며 "시끌벅적하지만, 영향은 훨씬 적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선 "주주자본주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기본 노선에서 과거와 달라진 건 없다"면서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한국은 촛볼혁명으로 세계 유례없는 업적을 이뤄냈다"며 "촛불혁명은 신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적 정치탄압 때문에 일어났다. 그걸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2007년 우리말로 번역·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당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근사한 구호 아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신자유주의 담론의 허실을 분석한 책이다. 전 세계 20개국에 출간돼 지금까지 70만 부가 판매됐다.
국방부는 책 출간 이듬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미·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반정부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22종의 도서와 함께 불온도서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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