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내편인줄 알았는데 재앙"…한국 보수주의 정체성 위기
워싱턴포스트 "친박 집회에서 트럼프 사진 사라져"
'기존 보수 입장 고수" 對 "변화 불가피'…보수 행로 "불분명" 진단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북 강경 어조, 군사력 강조, 진보 정치에 대한 경멸 등 모든 것이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우파를 지배해온 생각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내 편으로 보였으나, 취임 1년 반이 지나고 보니 사실은 재앙이었다"
미국 매체 워싱턴 포스트는 15일(현지시간) 한국 우파의 "절정의 정체성 위기"를 다루면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좌파 정부를 도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홍 전 대표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의 한 일식당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 때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트럼프에 비유되기도 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와 거리를 두면서 "트럼프는 외교를 사업상의 거래쯤으로 보는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적 우파는 "북한에 대한 깊은 적개심과 미국과 군사동맹에 대한 무한 지지"에 정책의 뿌리를 둬왔는데, 정작 현재의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나고 칭찬할 뿐 아니라 미군 철수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언급"하는 상황을 맞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그러나 "한국 보수주의 운동의 부식은 트럼프의 대북 대화 이전에 이미 시작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로 가속화해, 보수주의가 심각하게 분열됐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한 바른미래당의 이준석(서울 노원병) 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는 "좌나 우로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지하(basement)로 갔다"고 이 매체에 평했다.
신문은 그러나 대한애국당 같은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때 트럼프를 구세주로 보고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도와주고 북한을 선제타격해 달라고 요청했던" '친박' 집회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엔 트럼프의 사진이 사라졌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신문은 "보수가 2020년 총선에서 의석을 늘리기 위해선 젊은층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지만…최근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보도는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를 구성, 새 지도부와 한국 보수주의를 대표할 새 간판 얼굴을 내세우려 하고 있으나 "일반 국민과 미국 지도부와 괴리된 것으로 보이는 이 당의 기존 정강정책으로 인해 그 행로는 불분명하다"고 신문은 진단했다.
여전히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북미 회담이 곧 실패로 끝날 것이고 그러면 지지자들이 되돌아 올 것이므로 기존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일부는 한국 사회의 변화에 맞춰 자유한국당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회귀 가능성에 대해 진보 쪽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북미 회담이 실패할 경우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의 보수주의가 죽은 게 아니다. 잘 살아 있다"며 보수성향 신문들의 힘을 가리켰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강연재(서울 노원병) 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는 사람들이 북한과 평화를 원하는 게 분명하므로 보수도 이를 받아들이되 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이준석 전 후보는 더 큰 폭의 변화를 주장했다. 보수도 주한미군에 대한 절대적 의존을 재고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온 것 뿐이다. 사실, 나는 그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홍준표 전 대표 같은 구세대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적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며 홍 전 대표가 미국에서 수개월간 머물며 북한 문제를 연구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yd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