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기 판사 동원해 "상고법원 위헌 주장 마라" 회유(종합)
법원행정처, 민변 변호사에 '합리적 의사결정 못해' 세평
"판사들이 국회의원 개별 접촉했다면 입법발의권 침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이지헌 기자 =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에 비판적인 변호사의 대학 동기 판사를 동원해 "상고법원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하지 말아달라"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이재화 변호사는 16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고 기자들과 만나 "윤성원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이 공청회 전에 전화를 걸어와 '헌법 위배 주장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현재 광주지방법원장으로 재직 중인 윤 전 실장은 이 변호사와 고려대 법대 동기다. 이 변호사는 "을의 입장이라 심리적으로 위축됐지만 '왜 참견하냐, 기분 나쁘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014년 9월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에 참석해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도입안을 "권위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헌법상 최고법원이 아닌 '각급법원'에 불과한 상고법원에 최종심을 맡길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이날 열람한 법원행정처 문건 중 "지나친 비주류 의식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평이 있다" 등 자신에 관한 언급을 6∼7건 발견했다고 전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변호사에 대해 "몇몇 법원 인사가 접촉했는데 오히려 압박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는 조사 중 열람한 '상고법원 공동발의 가능 국회의원 명단 및 설득전략' 문건에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안에 서명할 개연성이 높은 의원과 발의에 도움이 될 '주요 설득 거점 의원' 등을 분석해놓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상고법원 법안에는 국회의원 168명이 참여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실국장들이 개별적으로 접촉해 서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법관이고 의원들은 선관위원장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의원들의 입법발의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에 대한 국회의원들 찬반 의견과 관련해 "법사위에 포진한 의원들은 친노 세력이고, 민변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주관적 해석을 문건에 적었다고 이 변호사는 덧붙였다.
민변 내에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회원들을 조직해 독자적 의견을 내도록 하는 방안, 보수성향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과 접촉해 논평을 내거나 공청회에서 찬성 의견을 내도록 하는 방안 등 법조계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구상도 문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진보성향 학자들을 거론하며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정도의 의견만 받아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으로 적었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이날 이 변호사를 불러 민변 사법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법원행정처의 구체적 회유나 압박이 있었는지 조사했다.
검찰은 앞서 법원행정처로부터 넘겨받은 410개 의혹 문건 가운데 7건에서 민변에 대한 회유·압박 구상을 담은 내용을 확인하고 지난 11일 송상교 사무총장 등 현재 집행부를 불러 실행 여부를 확인한 바 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