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 30년 사상 초유 사용자 '보이콧'…갈라진 노사
우여곡절 끝 '반쪽 회의'서 최저임금 결정…근로자·공익위원이 표결
후유증 이어질 듯…영세 사업자-노동자 간 '을의 갈등' 심화 우려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이 14일 우여곡절 끝에 시간당 8천350원으로 결정됐지만, 이번 최저임금 심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노·사 갈등을 드러냈다.
기업계와 노동계 모두 이번 결정에 반발하고 있어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영세·소상공인 등이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모라토리엄'을 실제 행동에 옮길 경우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신음하는 영세 사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을(乙)들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는 이날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한 제15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 5명과 공익위원 9명의 참석하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8천350원으로 의결했다.
이날 회의는 사용자위원 9명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13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열린 14차 전원회의에도 불참했고, 같은 날 밤 참석 여부에 관한 확답을 달라는 최저임금위 요청에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 불참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자체를 '보이콧'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1988년부터 30년 동안 해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에서 의결했는데 결정 당일 노·사 중 어느 한쪽이 회의 진행에 불만을 품고 퇴장한 경우는 많았지만, 아예 불참한 것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노·사 양측이 제시한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에서 계속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격차를 좁혀나가는 과정 자체가 생략됐다. 대화 테이블에 남은 근로자위원과 공익위원이 각기 안을 내놓고 표결에 부쳐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사용자위원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보이콧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경영계의 강한 반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용자위원이 지난 5일 최저임금위에 제출한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올해와 같은 7천530원, 즉 '동결'이었다. 당시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업종을 기준으로 최초 요구안을 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은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게 경영계의 입장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소상공인은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감을 터뜨렸다. 편의점주들도 내년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를 경우 휴업 등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사용자위원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아예 불참하기로 한 것은 소상공인 등의 최저임금 모라토리엄을 위한 명분 쌓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의 후속 조치로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부의 지원책이 시급해 보인다.
경영계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보이콧은 최저임금위라는 사회적 대화 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 사용자, 공익위원 각각 9명씩 모두 2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캐스팅보트는 공익위원이 쥔다. 정부가 위촉한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공익위원은 대체로 정부 입장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올해 공익위원은 진보 혹은 친(親) 노동 성향이라는 주장이 사용자위원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사용자위원이 요구했던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 방안이 지난 10일 전원회의에서 부결됐을 때도 반대가 14표로 나오자 공익위원 전원이 근로자위원 쪽에 선 것으로 추정됐고, 사용자위원은 공익위원에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
공익위원을 정부 추천이 아닌 노·사 추천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활동한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는 공익위원이 노·사 양쪽의 대리인이 돼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사용자위원은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금번 결정은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 채 이뤄진 것으로, 향후 이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결정에 참여한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이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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