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극과 극' 인생역정 두 감독…마지막에 웃을 자는
'1998 우승 주역' 데샹 프랑스 감독, 사령탑으로 두 번째 우승 도전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의 '무명 반란' 한계 도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는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사령탑 디디에 데샹(49)과 즐라트코 달리치(51) 감독은 선수 시절 둘 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쉰 살 전후 두 감독의 공통점은 이 정도가 전부다.
둘의 축구 인생은 '극과 극'이었다.
데샹 감독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5년 낭트(프랑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데상은 마르세유, 유벤투스, 첼시, 발렌시아 등 유럽 주요 구단을 거치며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프랑스 대표팀에서 1989∼2000년까지 103경기를 뛰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으로도 인정을 받은 그는 프랑스가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할 때 주장 완장을 차고 있었다.
은퇴 이후엔 AS모나코에서 곧바로 감독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성공적이었다. AS모나코의 2003-2004 유럽축구연맹(UEFA) 준우승을 이끌었다.
유벤투스로 옮겨서는 팀의 세리에A 승격을 이뤄냈고, 마르세유에선 리그컵과 리그앙 우승을 달성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프랑스 대표팀을 맡은 데샹 감독은 장기 집권하며 대표팀을 월드컵 결승까지 올려놨다.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하면 데샹은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역대 세 번째 감독이 된다.
결승 진출에 성공한 후 데샹 감독은 "20년 전의 성취는 영원히 남아있겠지만 계속 백미러만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역사의 새 장을 쓰러 왔다"고 말했다.
데샹 감독이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달리치 감독은 '가시밭길'을 개척해왔다.
달리치 감독은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여러 프로팀에서 뛰었다. 국가대표 경력은 전무하다.
은퇴 후 코치를 거쳐 크로아티아 여러 프로팀에서 감독을 지낸 달리치는 2010년 중동 무대에 도전했다.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파이살리를 맡아 2010-2011시즌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알힐랄을 거쳐 2014년 아랍에미리트(UAE) 알아인으로 옮겨서는 여러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팀을 가파르게 성장시켰다.
축구 정보 사이트 풋볼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알아인은 2014년 3월까지만 해도 세계랭킹 335위에 해당하는 구단이었는데 달리치 감독이 온 후 2015년 12월 122위까지 올라갔다.
알아인 감독 시절 국내 팬들에게는 색다른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알아인은 지난 2016년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전북 현대와 맞붙었는데 박충균 전북 코치가 주심 판정에 항의하자 달리치 감독은 박 코치가 경기 흐름을 방해한다며 전북 벤치로 와서 소리를 질렀다.
달리치는 박 코치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도 했고 결국 둘은 함께 퇴장당했다.
중동을 떠나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맡게 된 것은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이었다. 안테 차치치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후 급히 부름을 받았다.
크로아티아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물러난다는 조건이었으나 달리치는 본선 진출을 물론 사상 첫 결승 진출까지 이뤄내며 크로아티아 축구사를 새로 썼다.
결승을 앞두고 달리치 감독은 "살면서 나는 항상 어려운 길을 택했고 스스로 싸워야 했다. 사다리의 맨 밑에서 시작했다"며 "유럽의 어떤 감독들은 단지 그들이 선수로서 유명했다는 이유만으로 빅클럽을 감독직을 맡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 협상도 하지 않고 수락했다. 내 평생의 꿈이었기 때문"이라며 "크로아티아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믿었고 선수들을 믿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