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에 잠 못 드는 밤…함경도로 떠난 암행어사의 고충
조선 문인 구강이 쓴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 분석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수십 수백 마리가 넘는 빈대 같은 것이 이불 속에 여기저기 숨어 있어 비린내가 코를 찔러댔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고생이 이날 밤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
조선 후기 선비 구강(1757∼1832)은 1812년 9월 1일 함경도 암행어사로 임명돼 먼 길을 나섰다가 그해 10월 낯선 잠자리에서 봉변을 당했다. 그는 174일간 겪은 일을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休休子自註行路編日記)라는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그동안 발굴된 조선시대 암행어사 일기는 15종에 이르는데, 성균관대 존경각에 있는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는 분량과 내용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동욱 한양대 교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간행하는 학술지 '민족문화' 제51집에 실린 논문 '휴휴자 구강의 암행어사 일기 연구'를 통해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에 담긴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했다.
암행어사는 왕이 보낸 특명사신이어서 형편이 넉넉했을 듯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해야 했기에 경비는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특히 숙소는 암행어사에게 가장 큰 골칫덩이였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 교수는 "구강의 일기에 나오는 숙소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며 "하나는 불결함과 열악함에 대한 토로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릿병을 앓는 50대 중년이었던 구강은 빈대와 동침하는 것은 물론 구멍이 뚫려 바람이 통하는 집에서 묵기도 했고, 숙소로 삼을 만한 집을 찾았으나 주인집 아내가 역병에 걸려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거처를 옮기는 일도 경험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박 교수는 "구강은 밥과 술을 대접받았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설사를 핑계 대고 못 먹겠다고 한 적이 있고, 저녁상이 너무 더러워서 식사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함경도 지역은 지세가 워낙 험해 호랑이, 곰 같은 맹수가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박 교수는 "열악한 숙소, 입에 안 맞는 음식, 맹수 출몰은 구강 일행에게 큰 고통을 주었지만, 그는 기억을 고통스럽게만 그리지 않았다"며 "다른 암행어사 일기가 단순한 기록이라면 구강의 일기에는 유머와 재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강이 남긴 기록 중 재미있는 내용은 독특한 함경도 풍속을 묘사한 대목이다. 구강은 "함경도 사람은 딸을 낳으면 서른 살이 가까워진 뒤에야 시집을 가게 했으니 대개 여자가 매우 귀한 까닭이었다"고 적었다.
또 아들을 낳으면 3일 안에 찬물에 목욕을 시킨다거나, 친척이 죽으면 가죽과 살은 긁어내고 뼈만 거둬 상자에 지고 가는 풍습도 있었다.
구강은 추위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함경도 사람의 특성에 대해 "웅건한 사람이 절반이고, 날래고 사나운 사람이 절반"이라며 "달리는 범이나 구멍에 있는 돼지라도 활을 쏘기만 하면 번번이 명중했다"고 칭찬했다.
박 교수는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 문체에 대해 "짧은 문장을 선호하고 고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며 "대화체를 많이 써서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재미까지 배가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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