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생과 학부모가 지향하는 최고 가치는 가족 행복"

입력 2018-07-10 15:15
"지방대생과 학부모가 지향하는 최고 가치는 가족 행복"

최종렬 계명대 교수가 쓴 '복학왕의 사회학'

"적당주의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국가가 가족 대신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저는 구체적인 꿈은 없고 틀만 있어요. 저의 꿈은 그냥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예쁜 아내 얻고 아들딸 예쁘게 크는 걸 보면서 오래 사는 것입니다."

대구·경북 지역 2∼3위권 대학에 다니는 3학년 복학생 '덕배'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삶을 이야기해 달라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족이다.

같은 지역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3학년생 민지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행복에 대해 "평소에 그냥 가족들이랑 진짜 소소하게…… 집에서 엄마 아빠랑 치킨 시켜놓고 맥주 한잔 하면서 얘기하고 그런 부분에서 느끼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2005년 계명대 사회학과에 부임한 최종렬 교수는 신간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지방대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를 심층 면접해 '가족의 행복'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독특한 가치관이 굳어진 현실과 그 원인을 파헤친다.

책은 저자가 지난해 2월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동명의 학술 논문에서 시작됐다. 지방대 재학생에게 초점을 맞춘 이 논문을 발전시켜 졸업생의 행보를 추적하고 학부모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는 정체성과 감정을 제대로 들어주는 상대가 없다는 점에서 지방대생을 '소수자'로 규정한다. 여기에서 지방대는 지역에서 최고로 치는 대학이 아니라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지칭한다.

계명대가 있는 대구와 경북 지역 2∼3위권 대학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저자는 지방대 3∼4학년생 6명, 20∼30대 졸업생 17명, 학부모 6명과 대화를 나눴다. 졸업생은 지역에 남은 경우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에 간 사람과 상경했다 돌아온 사람이 각각 4명과 2명이었다.

저자는 조사 대상자 29명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식으로 좋은 삶을 추구했는가', '좋은 삶을 위해 일상에서 무엇을 실천하는가'를 물었다.

이를 통해 지방대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를 막론하고 십중팔구는 '가족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공이 아니라 가족을 꾸려 오손도손 사는 일상으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지방대생이 가족 행복을 지상 최고의 명제로 인식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입시에서 겪은 실패의 경험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지방대에 온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목표를 높게 잡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지방대라는 간판은 자본과 명성을 얻는 데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주변 환경.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두 평범하고 무난한 가족을 꿈꾸기에 굳이 아등바등 살 이유가 없다. 게다가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순간 유대관계를 깨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도전을 포기한다. 저자는 이러한 행태를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더군다나 지방대생 학부모들은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 저자는 사회학도로서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 대학원 진학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고백한다. 학생들이 의욕이 없을뿐더러 부모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대 부모 세대와 지방대 자녀 세대 둘 다 삶이 지향 가족 안에서 시작돼 생식 가족 안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가족 밖으로 나가는 경우에도 모두 유사 가족을 형성하고 그들과 주로 어울린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분석은 지방대생에 대한 과도한 공격과 비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지방대생에게 생존은 가치이념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지방대생에게는 자기계발 의지가 아니라 자기보존 의지가 강하다"며 "이들에게는 '평범한 사람이 돼 살아갈 것!'이라는 습속이 너무나 자명한 사회적 사실로 다가온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지방대생과 학부모들의 가치관을 비판하지 않지만, 가족이라는 안전망에 지탱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건강한지 질문한다. 만일 가족 사회가 무너진다면 지방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저자는 지방대생이 견고한 가족이라는 유대관계를 깨고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공적 의무와 책무를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월의봄. 460쪽. 2만4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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