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 "'함무라비' 집필 때 김은숙 작가 만나"

입력 2018-07-09 18:07
문유석 판사 "'함무라비' 집필 때 김은숙 작가 만나"

"20년 재판하며 쌓인 것 풀어내…선의는 외로운 법"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잔잔한 호평 속에 내주 종영을 앞둔 JTBC 월화극 '미스 함무라비'의 작가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작품 탄생 뒷이야기를 대본집으로 전했다.

문유석 판사는 최근 발간된 '미스 함무라비' 대본집 서문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미스 함무라비'는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의 자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드라마 대본의) 형식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 제작사에 샘플을 달라고 했는데 '태양의 후예' 대본 파일이 왔고, 국민의 38.8%(시청률)가 봤다는 대히트작을 뒤늦게 접하게 됐다"며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같은 대사가 툭 튀어나오는 데 감명받아 '태양의 후예' 파일에 '미스 함무라비'를 덮어썼다"고 설명했다.

문 판사는 이후 3부까지 집필했고, 제작사 대표가 김은숙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해 실제로 만나게 됐다고도 전했다.

그는 "세상에, 이건 발성 연습을 시작했는데 마리아 칼라스를 만난 격"이라며 "고무적인 것은 개그 또는 '심쿵'을 위해 쓴 임바른(김명수 분) 마음의 소리를 다 좋아하시더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로코(로맨틱코미디) 장인이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요소들 역시 함께 가져가도 좋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김 작가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후반부 대본 어딘가에 '이스터 에그'처럼 살짝 녹여 놓았다"고 덧붙였다.



문 판사는 또 대본을 써나갈수록 정말 쓰고 싶은 건 법이나 재판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년 동안 재판을 하면서 그리고 법원에서 생활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봤고, 이 사회의 볼 구석, 못 볼 구석을 봤다"며 "그러면서 가슴 속에 쌓여온 것들이 있었나 보다. 그건 울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난 홀린 듯이 보아온 인간 세상의 단면들을 대본 곳곳에 채워 넣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 판사는 특히 주인공 박차오름(고아라)에 현실에서 겪은 혼란과 좌절이 많이 투영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극의 주인공이란 영웅이어야 하고,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내가 현실에서 보아온 것은 내부고발자가 왕따당하고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는 것이었다"며 "사람들은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 짜증을 낸다. 나는 생채기 하나 입지 않으면서 멀리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힘세고 완벽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세상을 확 뒤집어엎어 주기만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스 함무라비'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익숙한 모든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예외적인 존재인 박차오름이 아니다"라며 "임바른, 한세상, 정보왕 등 어떤 방향으로든 박차오름으로 인해 시작된 변화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의를 외롭게 두지 않으려면"이라고 글을 맺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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