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출제 믿을만한가]③오류 잦지만 보고의무·통계도 없어
한 학교에서 4년간 출제 오류 141건 적발되기도
"교사 1인 책임 시스템도 문제…보호 장치 필요"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오예진 김예나 기자 = 중·고등학교 중간·기말고사 출제 오류는 일차적으로 교사의 '단순 실수'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단순 실수'가 똑같은 곳에서 계속 빈발한다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올해 1월 공개된 서울시교육청의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의 A 사립고에서 2014학년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발생한 중간·기말고사 출제 오류는 자그마치 141건에 달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4년 38건, 2015년 48건, 2016년 37건에 이어 지난해에도 18건의 오류가 발생했다.
◇ 절차 안 지키고 '몰래' 정답 정정
더 큰 문제는 A고가 정답을 바꾸거나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등 정답을 정정할 때 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지침'은 이럴 경우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서 심의하도록 못박고 있으나, A고는 이 지침을 위반하고 교장 결재만으로 처리했다.
교사의 실수나 부주의로 문제가 생기자 학교가 자체적으로 은폐하고 넘어가려 한 정황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강서구에 있는 B 고교에서는 2016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정답을 오답으로 처리하거나 오답을 정답으로 처리하고, 채점 기준에 없는 유사 정답을 인정하는 등 14건의 채점 부적정 사례가 적발됐다.
경제 과목의 채점 기준에서는 '단결권'만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해 놓고도, 실제로는 '노조에 가입할 권리' ' 노동자가 조합 만들기 가능' 등도 정답으로 채점해 준 식이다.
영어 과목에서는 학생이 맞게 쓴 정답을 오답으로 처리하는가 하면 철자를 엉터리로 쓴 답안을 정답 처리한 사례도 드러났다.
◇ 보고 의무도, 공식 통계도 없다
일선 학교에서 발생한 출제 오류에 관한 교육 당국의 공식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고교가 교과협의회나 학업성적위원회 개최 결과를 교육부나 교육청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 출제·채점 오류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다. 지역별 교육청의 정기·수시 감사에 걸리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공립이 아닌 사립 중고교에서 이런 문제가 심하다는 게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얘기다.
서울 강북구의 C 공립중학교 교사 이모 씨는 "정기적으로 인사 이동이 있는 공립학교의 교사나 교장·교감은 '출제 오류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꼬리표를 새로 이동한 학교에서도 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조기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사립학교는 분위기상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심규철 공주대 사범대 교수는 "학업성적위원회 개최를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학교가 교장 결재만으로 처리하는 등의 편법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학부모의 교육열에 따라 오류 지적에 대한 학교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교사는 "강남과 비교하면 학부모가 상대적으로 학교에 신경 쓸 여력도 떨어지고 학업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이의제기가 많지는 않다"며 "출제 오류에 대한 교사의 민감성도 이런 환경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교사 1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문제
출제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출제를 맡은 담당 교사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시 D 고등학교의 박모 교사는 "교사는 문제 출제에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도록 객관식으로 출제하거나, 논술형도 단답형으로 내려는 경향이 생긴다"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그러다 보면 전체 문제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논란을 피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출제의 질이 떨어지고 교사의 평가 권한이 제약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규철 교수는 "교사들이 부담을 느끼고 문제를 굉장히 단순하게 내려고 하는 시도를 많이 한다"며 "출제와 채점 등 전반적 과정에서 교사들이 공식 협의회 같은 것을 통해 공동으로 출제를 하고, 이의가 제기되면 이를 통해 대응하는 식의 교사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오류를 인정한 교사에게 지나치게 큰 불이익이 갈 수 있는 점도 문제다.
교사 입장에서는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위원회를 여는 과정에서 경위서를 제출해야 하고,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구두·서면 경고를 비롯한 행정조치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저지른 실수에 비해 너무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사는 "사전에 검토하고 문제를 제출해서 교과주임. 교무부장, 교감 결재를 받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건 사전에 충분히 가려낼 수 있었던 오류를 못 봤다는 것이어서 교사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잘못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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