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안오주는 사선에 선 인물, 진다면 죽을 수밖에"
'무법 변호사'서 악에 이용당한 악 세밀하게 그려내며 열연
"뿔처럼 양쪽으로 깊이 파인 머리·사투리 직접 연구"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인기리에 종영한 tvN 주말극 '무법 변호사'의 배경이 된 기성시는 마블 작품 속 부패할 대로 부패한 도시 고담을 떠올리게 했다.
그 중심에는 절대 악(惡)을 상징하는 판사 차문숙(이혜영 분)과 그 악에 이용당한 또 다른 악, 기성시장 안오주가 있었다.
양쪽 이마에서부터 깊게 파여 악마의 뿔인 듯 보이는 머리와 바닷가 옛 조폭들이나 사용했을 것 같은 거친 사투리로 무장한 최민수(56)는 마치 원래 안오주로 태어난 인물처럼 보였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만난 최민수에게서 안오주의 독기 어린 눈빛은 볼 수 없었지만, 미처 기르지 못한 머리는 그대로였다. 덜 자란 머리가 쑥스럽다며 두건으로 가린 그는 "안오주는 이 모습이어야 할 것 같아 내가 직접 낸 아이디어지만 자라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 극 초반부터 안오주는 패하면 죽을 것 같았다. 차문숙처럼 교도소에 간다거나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 그렇다. 안오주는 평생을 사선(死線)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러니 진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 결말이 가장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 제작발표회 때 선과 악을 찾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예고했다. 종영 후 되돌아보는 안오주는 어떤 인물인가.
▲ 나쁜 놈이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명분이 필요했다. 나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은 스스로 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여겨야 했다. 특히 평생을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식으로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에 그 세월을 녹여내고 싶었다. 1회에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뛸 때도, 세월이 준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안오주는 차문숙의 아버지 차병호와 신뢰 관계였다. 순댓국집에서 차병호를 떠올리며 "여기서 (차병호와) 많이 먹었다"고 한 말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러나 차문숙은 안오주와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 안오주를 '개'라고 표현했지 않나. 그러니 돌아설 수 있었던 거다.
-- 헤어스타일부터 사투리까지 심상치가 않았다. 안오주 역을 어떻게 연구했나.
▲ 나는 시놉시스를 받고 캐릭터가 머릿속에서 체화되기 전까지는 대본을 볼 수가 없다. 그 기간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산통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보면 해당 캐릭터가 내 안에서 '세포화'가 된다. 안오주 역시 그랬다. 헤어스타일도 여러 가지로 고민했는데 이마 양쪽에 황색 테이프를 붙여봤더니 조명을 받아 마치 뿔처럼 보였다. '아, 이거다' 싶었다. 다음날 바로 미용실에 가서 밀어버렸다. (웃음) 사투리는 부산의 옛 사투리를 변형해 차용했다. 바닷가 옛 조폭들이 사용했을 언어들을 조금 순화한 것으로, '기성 사투리'로 보면 된다. 체중도 단기간 5㎏을 찌웠다.
-- 이혜영과 호흡이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액션 장면 등에서 후배 이준기와의 묘한 조합도 인상적이었다.
▲ 안오주는 차문숙과 봉상필(이준기)의 대결에서 촉매,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감정선이 더 잘 연결돼야 했고, 1초의 장면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심의 환경상 잘린 부분이 많아 그게 가장 아쉬웠다. 액션들보다도 감정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준기에게도 그런 점을 강조했다. (이때 마침 이준기로부터 전화가 왔고, 최민수는 "상필아"로 화답했다) 준기는 의리가 있는 친구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액션에서도 투박한 안오주와 기술이 화려한 봉상필이 조화를 잘 이뤘다고 본다.
-- 제작발표회 때마다 거침없는 행동으로 화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드라마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오만과 편견', '죽어야 사는 남자', 그리고 '무법 변호사'까지. 초반 화제성에 일조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같다.
▲ 당연하다. 계획한 거다. 그런 행동들이 실제로 드라마가 잘되는 데 도움을 준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그리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나는 그걸 '작두를 탄다'고 표현한다. (웃음)
-- 코믹, 액션, 악역을 전천후로 오간다. 개인적으로 어떤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즐겁나.
▲ 정말 각각 다 재밌다. 아까도 말했듯 캐릭터가 내 안에서 세포화하며 자리 잡는 순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연기할 때 사기를 치면 안 된다. 그래서 동기가 꼭 필요하다. 안오주를 연기하면서도 내 대사보다 상대 대사를 더 열심히 봤다. 그러다 보면 맥락이 생기고, 내 대사는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리허설 거의 없이 늘 풀샷으로 한 번에 찍었다.
-- 드라마 종영 후에는 어떻게 지내는가. 차기작 계획은.
▲ 나의 모든 계획은 '언니'(아내 강주은)께 달렸다. 요새는 설거지와 쇼핑 후 짐을 날라주는 '포터' 역을 충실히 하고 있다. (웃음) 자녀들과도 나는 친구처럼 논다. 그래서 아이들의 나이를 모른다. 나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과 실제 모습이 똑같다.
-- 가족 예능은 다시 할 계획 없나.
▲ 그것도 '언니'님께 달려있다. 당분간은 집안에 충실하고, 최근 취미인 디오라마(축소 모형)에 전념하려고 한다. 영화와 드라마도 보고 있다.
-- 디오라마 제작 수준이 프로급이다. 이곳에서 다 만드나.
▲ 손톱만 한 소품까지 다 직접 가져와 만든다. 제일 큰 작품은 만드는 데 8개월 걸렸다. 나는 친구도 별로 없고 혼자라 언니가 없으면 이곳에서 늘 작업한다. (갖가지 술도 많은데) 과음은 안 한 지 오래됐다. 1년에 두 번 정도, 감정이 쌓인 결정적인 순간에 한 잔씩만 한다. 예전에 산에서 칩거할 때 빗속에서 막걸리 딱 한 잔을 마셨는데, 한 20분간 잔을 쳐다보며 감정을 쌓은 뒤 절정에서 '원샷' 했다. 그런 순간은 평생 못 잊는다. '고수는 한 잔'이다. 사랑도, 친구도, 인생도, 술도 하나다. 크으∼.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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