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회피형 신중 인사가 북한 정치체제 생존력의 토대"

입력 2018-07-06 16:19
"위험회피형 신중 인사가 북한 정치체제 생존력의 토대"

북한군 수뇌 동시교체 분석보고서 "6월초 알려졌으나 고위층 인사는 빨라도 한달반 걸려"

노동당의 군 통제 강화책 연장…'함부로 하는 변덕스러운 인사' 이미지와 달라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최근 알려진 북한군 수뇌 3인방의 교체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제기됐지만,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 집권 이후 추진하고 있는 노동당 강화와 군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 정책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북한 지도부 동향을 추적해온 마이클 매든 스팀슨센터 객원연구원이 주장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 인민무력상, 총참모장 등 서열 1-3위가 전부 교체됐고, 거의 동시에 알려졌으며, 알려진 시점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코 앞에 때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이 소식이 충격적이고 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을 비울 때를 대비했다든지, 박영식과 리명수는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각각 인민무력상과 총참모장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 경례를 했다든지, 리명수는 김 위원장 연설 때 조는 모습이 포착됐다든지 등의 이유로 "'잔인한 독재자'가 또다시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는 식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매든 연구원은 이를 잘못된 분석이라고 단정했다. 거수 경례만 해도, 노광철 신임 인민무력상 역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군복 차림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수 경례를 했다.

비핵화에 저항할 만한 방해 요소를 초기에 제거한 것이라는 해석이 "좀 더 이치있고 정확"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부차적인 요인"이라고 매든 연구원은 주장하고 북한의 당, 군, 정부 고위직 인사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장성택 처형과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뇌부 교체는 함부로 이뤄지지 않고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이뤄지며, 고도로 위험회피적인 인사관리 기법이야말로 북한 정치체제의 회복력과 생존력의 한 토대"다. 장성택마저도 정치국 특별회의에서 모든 직책을 박탈하기 전에 가택연금을 거의 2개월간 끌었고, 처형도 그 이틀 후 집행했다.

북한의 당과 군, 정부 수뇌 인사는 새 보직 임명 전 김일성정치대학(군)이나 김일성고급당학교(당과 정부)를 거치도록 하기 때문에 가장 빨라도 6-8주, 최대 6개월, 평균 3개월 정도 시일이 소요된다고 매든은 설명했다. '미친 독재자가 변덕스럽게 마구 교체하는 불안정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인민무력상과 총참모장의 '회전문식' 교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기간 17년보다 더 잦았던 것은 사실이다. 초기 권력 공고화 과정에서 북한식 민군 관계를 여러모로 시험했다는 것이다. "이 회전문은 2년 전 잠겼고 이제는 북한군 수뇌부의 임기가 안정됐다"고 매든은 설명했다.

새로 임명된 김수길 총정치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과 교체설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리영길 신임 총참모장은 "모두 김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래 고위직을 유지해온 김정은 충성파로, 그의 정책에 저항하지 않고, 별개의 오랜 후견 인맥도 없으며, 부정부패로 사복을 채울 염려가 없는" 인물들이라고 매든은 설명했다.

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38노스에 올린 보고서를 통해 북한군 3대 조직의 최근 수년간 내부 동태를 소개했다.

▲총정치국

매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2007년 정치국에서 정치 이력을 쌓았다. 2012-2015년 회전문 인사 시기에 그가 군 장악을 위해 국가안보 요직들에 총정치국 출신들을 다수 기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총정치국 마피아"가 형성되면서 위세가 커진 총정치국은 "2016년 후반과 2017년 초반에 이르러선 그대로 뒀다간 관료적 저항 등을 통해 김정은의 정책을 방해하고 정치적 권위에 도전하며, 이론적이지만 신변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집단으로 떠올랐다"고 매든은 설명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지난해 하반기 20년만에 처음으로 총정치국에 대해 맨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전면적인 검열을 수개월 간 벌여 간부 여러 명을 처형하는 등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검열 대상은 군 간부 승진을 미끼로 한 수뢰, 민간 인프라 사업에 대한 군 인력과 자재 배정의 비효율성, 군 경제사업에서 고위층의 횡령 등 만연한 부정부패였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 서해안에 북한군 수산업 부대 소속 '유령 어선'들이 대거 표류한 사태도 검열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조직부 담당 국장이 손철주로 교체되고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관리 책임을 지고 해임됐다. 한국의 국정원도 지난 2월 5일 이 사실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황병서 후임으로 70대 후반인 김정각이 기용됐으나 이는 최근 확인된 김수길 임명을 염두에 둔 과도적 조치였다. 김수길은 2012-2013년 김 위원장의 집권 초기 군부대 현장지도 때 수행한 비공식 참모단의 일원이며, 특히 장성택 처형 후 그의 인맥이 장악하고 있던 평양시당을 맡아 이들을 청산하는 역할을 했다.

▲인민무력부

인민무력부는 1980년대 후반 이래 총정치국, 총참모부 등 각종 북한군 조직의 명목상의 우산조직에 불과했으나 김정일 집권기 후반부터 실질적 기능을 갖는 조직으로 부상해 김정은 집권 이후 국방정책의 대표적인 기관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를 위한 대대적인 조직개편 때문에 북한군 3대 조직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최고위층 교체가 이뤄졌다.

해임된 박영식은 '총정치국 마피아'의 일원으로, 4개 야전군단 사령관이나 군단 정치위원회 책임자로 다시 기용돼 남북 간에 이뤄질 군사합의 이행의 책임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매든은 예상했다.

신임 노광철은 북한의 재래·전략 무기 제조와 생산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원장으로서 2년여 재임하면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북한의 핵시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김정은 집권 후 부상했고, 군과 당을 오갔다는 점에서 김수길 총정치국장과 공통점이 있다.

노광철 기용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에 따른 보상과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최고위직 기용을 앞두고 국가안보 분야를 두루 경험토록 하려는" 의도라고 매든은 해석했다.

▲총참모부

아직 교체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신임 총참모장 리영길은 이미 2013년 8월-2016년 2월 총참모장을 지냈고 2013년 2월-8월, 2016년 5월-2018년 5월엔 제1 부총참모장을 맡는 등 2013년부터 죽 총참모부 최고위직에 있어왔다. 2016년 3개월간 공개석상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처형설이 잘못 나돌기도 했다.

2016년 2월 총참모장에 임명된 리명수는 아직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교체설의 진위는 불분명하다고 매든은 지적했다. 교체됐더라도 김 위원장이 다른 보직을 통해 "계속 곁에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후계자 시절부터 군부대 현장 지도를 수행한 리명수는 올해 만 84세로, 2007년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으로서 김정일 사망 직전까지 '가신' 역할을 했고, 2013년 2월 인민보안부장을 끝으로 은퇴한 지 3년 만에 총참모장에 재기용될 만큼 김정은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와 성품은 김정은을 진정시키는 효과(calming effect)가 있다"고 매든은 설명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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