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필·권성동·조양호 영장 줄줄이 기각…法-檢 신경전 가열
검찰 "다른 의도 있는 것 아니냐" 격앙…법원도 강하게 반박
"법원, 재판거래 의혹 수사 국면서 존재감 과시" vs "늘 있는 신경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최근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핵심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줄줄이 기각됐다.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나선 검찰이 법원행정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카드를 여전히 쥐고 있는 상황에서 영장 기각이 잇따르자 법원과 검찰 사이에 신경전이 거세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법원은 지난 4일 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구속영장을 잇달아 기각했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활비를 받아 '어용 노총' 설립을 지원한 혐의, 권 의원은 강원랜드에 의원실 직원 등 10여 명을 채용해달라고 청탁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 사건이 사회에 미친 영향과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신병 확보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법원은 이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현 단계에서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국정원 자금을 요구하고 돈을 받아 어용 노총(국민노총)에 건넨 과정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검찰은 전달책 역할을 한 부하직원의 자백과 자금 수령을 입증할 영수증까지 확보했으므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사유 심사 이외의 요인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노조와 관련된 공작사건에 대해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 뭔가 다른 기준과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법은 즉각 "검찰 수사팀이 개별 사건의 영장 재판 결과에 대해 '뭔가 다른 기준과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표현하면서 불만과 근거 없는 추측을 밝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심히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영장 기각에 대한 검찰의 비판에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데 비하면 상당히 강도 높은 반응이다.
법원과 검찰은 권성동 의원 영장 기각을 놓고도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구속영장에 기재된 기각사유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법원이 언론에 공개한 사유와 다르다는 점을 들췄다. 영장에는 "업무방해죄 등의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적고, 언론에는 "법리상 의문점" 때문이라고 알렸다는 것이다. 법원은 언론에 요약 전달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다소 달라졌을 뿐 본질적 뜻은 같다는 입장이다.
6일 새벽 조양호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검찰 안팎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횡령·배임·사기 등 조 회장의 혐의가 다섯 가지나 되는 데다 한진 일가 소유인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챙기는 등 전형적인 재벌가 '갑질'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조 회장 영장 기각에 대해서는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기각사유를 분석하고 추가 수사를 검토한 뒤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지 결정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최근의 잇단 영장 기각을 두고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법원이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사법부 비위를 '저인망식'으로 캐기 위해 검찰이 의혹과 무관한 자료까지도 압수수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영장 심사가 엄정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견제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민주노총도 전날 성명을 내고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앞두고 영장 기각을 통해 자신들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시위를 하는 듯하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법원과 검찰 사이에 수시로 벌어지는 신경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우연히 민감한 시기에 주요 피의자들의 구속영장이 겹쳐 청구되고 법원이 기각했을 뿐 이 정도 신경전은 통상적인 것 아니냐. 법원 수사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조양호 회장의 구속영장은 발부될 만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여론을 등에 업은 적폐청산 수사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