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의 불씨' 인천 5·3시위 기록물 32년만에 빛 본다

입력 2018-07-05 12:00
'6월항쟁의 불씨' 인천 5·3시위 기록물 32년만에 빛 본다

'박종철 사건처리 개요' 등 비공개 기록물 1만6천권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1987년 6월 항쟁의 불씨가 됐으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인천 5·3 시위' 관련 비공개 기록물이 32년 만에 세상에 나온다.

이를 통해 인천 5·3 시위의 실체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해양수산부, 경찰청 등 29개 기관에서 생산한 비공개 기록물 1만7천475권을 심의해 이 중 92.6%(1만6천182권)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공개 전환된 기록물 중에는 인천 5·3 시위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 기록물이 눈길을 끈다.

인천 5·3 시위는 1986년 5월 3일 인천 주안역 앞 시민회관 사거리에서 일어났다. 시민단체, 대학생, 노동자 등 수천 명이 모여 직선제 개선 등을 요구했다. 1985년 말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개헌 운동이 수도권에서 처음 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시위로 319명이 연행돼 129명이 구속됐고, 60여명이 지명수배됐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이 요구한 대통령 직선제보다는 폭력성이 중점적으로 부각되면서 언론·여론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인천 5·3 민주항쟁으로 인천 이외 다른 도시로 직선제 개헌대회가 확산됐으며 결국 1987년 6월 전국적인 대중주도의 민주화 시위가 퍼져 6·29 선언으로 이행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인천 5·3 시위와 관련해 인천지방경찰청이 만든 '시위사건 종합 수사상황', '종합수사보고', '피의자에 대한 수사경위보고' 등이 공개됐다.

특히, 시위 현장에 참가한 이들의 증언이 포함돼 있어 5·3 시위가 조직되고 실행되는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시위 참여자를 수사한 결과가 공개됨으로써 과거 연구결과의 수준과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선 '박종철 사건처리 개요'가 공개됐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이 사건의 발생부터 응급 처리, 사건 발생 보고, 사체 처리, 부검 소견 설명과 대외 공표, 장례 등의 과정을 개략적으로 담은 문건이다.

문건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된 경찰들의 재판 과정도 기록돼 있다. 구형과 선고 내용, 국회의원 답변 자료, 사건을 축소하려 한 경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cho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