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국·채소절임이 궁극의 맛?

입력 2018-07-05 11:40
밥·국·채소절임이 궁극의 맛?

'퇴사하겠습니다' 저자 신간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생활에서 불필요한 짐과 물건들을 줄이자는 '미니멀리즘'이 번지는 가운데 '음식 미니멀리즘'을 설파하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퇴사하겠습니다'로 유명한 일본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의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엘리)가 번역 출간됐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다가 정년을 포기하고 50세에 나와 '퇴사하겠습니다'란 책을 펴낸 저자는 일본과 한국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종일 회사에 매여있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으면서 집도 줄이고 짐도 줄이고 미니멀리즘으로 살아보니 진짜 행복을 느끼겠다는 이야기는 많은 독자에게 퇴사의 유혹을 느끼게 했다.

다만, 퇴사를 감행하는 일이 워낙 쉽지 않은 문제이다 보니 실행에 옮긴 이가 많지는 않았을 텐데, 이번에 나온 '음식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은 누구나 한 번씩 따라 해볼 만한 삶의 방식이어서 유용해 보인다.

'돈을 모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 허황된 꿈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재 자신의 생활을 가장 자유롭게 하는 것이 "돈도 아니고 자산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도 아니"라며 "바로 '요리'"라고 단언한다.

그가 말하는 요리는 "책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 다시 말해 밥, 국, 채소절임 같은 것들"이다. 요리 시간 10분, 한 끼에 식재료비 200엔(한화 2천원가량),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도 필요 없는 수수하고 소박한 밥상이다.

"따분하다고? 먹는 재미가 없이 무슨 맛으로 사냐고?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푸짐한 밥상이야말로 내일을 위한 활력소라고 생각하며 전 세계 요리를 만들어 먹었었다. 잡지와 입소문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하고 맛집을 순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생활을 시작해보니 예상치 못하게도, 내 입으로 칭찬하기는 뭣하지만, 정말로 맛이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밥상이 그리워 집으로 뛰어갈 만큼. 진짜다. 농담이 아니다." ('프롤로그' 중)

그가 이런 맛의 신세계를 발견한 것은 냉장고를 없애고 나서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충격을 받아 절전생활을 시작하면서 냉장고까지 없앴다. 처음엔 엄두가 안 났지만, 냉장고가 없던 에도시대를 본보기로 삼았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사극에 나오는 식사 장면을 관찰하니 그들은 기본적으로 밥, 국, 채소절임을 먹었다.

이를 따라 하려고 밥도 전기밥솥이 아닌 냄비로 지어보고, 살짝 소금을 넣었더니 갓 지은 밥만으로도 너무나 맛있었다고 한다. 그가 알려주는 냄비 밥 짓기 요령은 아주 쉽다. 여기에 화려한 양념이나 재료의 반찬은 오히려 밥 자체의 단맛을 해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수수한 반찬으로, 튀김두부를 거쳐 채소절임이나 김으로 옮겨간다. 여기에 따뜻한 된장국 하나만 있으면 한 끼 식사가 완벽해진다. 된장국에는 갖가지 말린 채소를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된다고 한다. 채소 말리기는 그저 베란다에 무나 팽이버섯 같은 것을 툭 던져놓고 하루 정도만 지나면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점점 저자가 묘사하는 맛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TV에 맛집·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화려한 음식들의 이미지에만 홀린 독자들에게 저자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손수 간단하고 소박하게 지어 먹는 밥이 진짜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점점 더 설득당하고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일본 '료칸'에서 묵을 때 나오는 화려한 저녁 밥상을 매일 먹으면 과연 맛이 있겠느냐고 물으며, 오히려 아침에 나오는 가정식 밥상이 매일 먹기에는 더 맛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

또 집에서 요리하면서도 '오늘은 뭐 먹지?' 하는 끝없는 무간지옥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한다. 밥만 맛있으면 반찬은 된장국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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