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코치에서 선수로' 윤수강 "형종이, 찬헌이와 함께 뛰다니"

입력 2018-07-05 09:07
'고교 코치에서 선수로' 윤수강 "형종이, 찬헌이와 함께 뛰다니"

2007년 대통령배 결승, 이형종 상대 끝내기 안타, 정찬헌과 배터리

LG서 방출 후 광주일고 코치로 일하다 선수 복귀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2017년 7월 15일, 광주일고 선수단을 태운 버스의 TV에서 프로야구 올스타전 생중계 영상이 흘러나왔다.

스물일곱, 다소 이른 나이에 고교 코치로 새 출발 한 윤여운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내 인생 목표가 '좋은 코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즐겁게 야구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도,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2018년 7월, NC 다이노스 포수 윤수강(28)은 이제 웃으며 1년 전을 떠올린다.

윤여운 광주일고 코치는 지난해 KBO리그 올스타전이 끝난 뒤, 선수 복귀를 위해 훈련을 시작했고 입단 테스트를 통해 NC에 입단했다. 그 사이 윤수강으로 개명도 했다.

4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윤수강은 "어제(3일) '가장 친한 친구' 정찬헌(LG 트윈스)과 생애 처음으로 맞대결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형종(LG)과 1군 경기에 함께 뛰는 것도 신기하다"며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 '눈물 왕자' 이형종을 울렸던 그 날 = 2007년 5월 3일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 윤수강은 상대 투수를 울렸다.

광주일고와 서울고가 우승컵을 놓고 맞붙었다. 9-9로 팽팽하게 맞선 9회말 2사 만루, 당시 광주일고 포수 윤여운은 서울고 에이스 이형종을 공략해 끝내기 안타를 쳤다.

하지만 경기 뒤 화제가 된 건, 이형종이었다.

앞선 4경기에서 공 330개를 던진 이형종은 결승전에 또 구원 등판했고 130개의 공을 던졌다.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윤여운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했고 결국 마운드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포트라이트는 패전투수 이형종을 향했다. 당시 승리를 챙긴 광주일고 투수 정찬헌도 화제를 모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당시 윤여운의 안타로 홈을 밟은 서건창(넥센 히어로즈)도 '대통령배 우승 주역'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 현 NC 포수 윤수강이란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윤수강은 "세리머니를 좀 크게 할 걸 그랬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형종이랑 찬헌이는 2008년 1차,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으면서 화제를 이어갔지만, 나는 야구를 못해서…"라고 말했다.

한때 윤수강은 2007년 대통령배 결승전을 화두에 올리지도 못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그 경기를 자세히 복기한다.



◇ 윤수강 앞, 높은 산 =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윤수강은 성균관대로 진학했다. 동갑내기 포수 경남고 장성우(kt wiz)가 롯데 자이언츠 1차지명, 김태군(NC, 현 경찰야구단)이 LG에 2차 3라운드에 지명받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4년 뒤에는 나도 프로에 가겠다"는 의욕으로 버텼다.

실제로 윤수강은 2012년 롯데에 2차 9라운드에 지명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개막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처음으로 자만했다"고 했다.

윤수강은 곧 2군으로 내려갔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1군에서 단 15경기만 뛴 그는 2015년 5월 kt로 트레이드됐다. 투수 박세웅(롯데), 포수 장성우(kt) 중심의 트레이드였다.

몇 걸음 앞선 장성우와 함께 kt로 옮긴 탓에 윤수강은 두 번째 팀에서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가 kt에서 1군 경기에 나선 건, 두 차례뿐이다.

그는 2015년 11월 2차 드래프트로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한 번도 1군에 오르지 못하고 무릎 부상까지 겹쳐 2016시즌 종료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윤수강은 "롯데에 입단하니 강민호 선배라는 높은 산이 있었다. 이후에도 내 앞에는 산이 있었고, 나는 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선수 생활의 미련을 버리고 모교 광주일고에서 코치로 새 출발 했다.

◇ 노력하고, 긴장하고, 웃어라 = 코치 생활도 즐거웠다. 윤수강은 "어린 선수들과 재밌는 일이 정말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다. 선수로 뛰는 즐거움을 더 누려야 했다.

NC에 입단해 다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윤수강은 가슴을 졸이며 2군 생활을 했다. 1군에 올라온 뒤에도 선발 라인업을 발표할 때까지 긴장했다.

그는 "워낙 부족한 게 많아서 노력을 더 해야 한다. 경기 전후로 많이 긴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웃는 날이 더 많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윤수강은 5월 15일 창원 롯데전에서 첫 타석에 1군 무대 첫 타점을 올렸으나, 9회말 2루로 뛰다 문규현의 송구에 머리를 맞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많은 사람이 놀랐지만, 윤수강은 다음 날 웃으며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7월 4일 잠실 LG전에서는 처음으로 3안타 경기(5타수 2타점)를 했다. 3-4로 뒤진 9회초 무사 만루에서는 LG 마무리 정찬헌을 상대로 2루 땅볼을 쳐 4-4 동점을 만들었다.

윤수강은 "고교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 찬헌이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다. 현역 복귀 준비를 할 때도 많이 응원해줬다"며 "'우리가 맞대결할 날이 올까'라는 말을 가끔 했는데 실제로 벌어지니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이형종, 정찬헌, 서건창 등 11년 전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함께 뛰었던 친구들이 여전히 몇 걸음 앞서 있고, 지금도 그들이 부럽지만 윤수강도 이제는 1군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는다.

좌절하고, 실패하고, 포기했던 윤수강이 "이젠 이를 더 악물어야 한다. 살아남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광주일고에서 잠시 가르쳤던 후배들이 고맙게도 자주 전화를 하고, 응원해줍니다."

윤수강은 "최소한 내가 가르쳤던 광주일고 후배들에게는 당당한 선배이고 싶다"고 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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