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새 정부, 비정규직·기업 해외이전에 '전쟁' 선포
디 마이오 부총리 '존엄법' 도입…노동시장 유연화 겨냥한 '잡스 액트' 폐기 선언
고용주 단체 "새 법안, 일자리·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 우려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달 1일 출범한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인 이탈리아 새 내각이 비정규직과 기업 해외이전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일(현지시간) 비정규직·임시직 억제와 해외이전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승인했다.
'존엄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법안은 이탈리아 최대 정당이자 포퓰리즘 연정의 주도 세력인 '오성운동'의 대표 공약에 기반한 것이다.
오성운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목표로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밀어붙인 전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잡스 액트'(Jobs Act)가 비정규직을 양산해 직업 안정성을 훼손한다고 비난해왔다.
루이지 디 마이오(31) 노동산업장관 겸 부총리는 이날 "새로운 법안이 '잡스 액트'를 해고할 것"이라며 전임 정부의 노동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새 법안은 향후 60일 내로 상원과 하원 표결을 통과해야 효력을 지니게 된다.
새로운 노동법안은 현재 3년까지로 돼 있는 임시직 계약 경신 가능 기간을 2년으로 줄이고, 부당 해고에 대한 보상금을 현행보다 50%까지 상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최근 관련 앱의 증가 등으로 우후죽순 늘고 있는 음식배달업 종사자들의 보호하기 위한 조치 등도 포함했다.
새 정부는 아울러 일자리의 역외 이전에 대해서도 칼을 빼 들었다.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이나 감세 등의 혜택을 받은 기업이 생산 시설을 해외로 옮길 경우, 지원받은 금액을 반환하거나 벌금을 내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 지원금을 받은 후 5년 이내에 회사를 옮기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 금액의 최대 4배까지 벌금을 내도록 규정했다.
새 법안에는 모든 형태의 도박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디 마이오 장관은 도박은 가정 경제를 해치고,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시급히 해결할 필요가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복권에 대해서는 이번 조치의 적용이 유예된다.
이번 법안에 대해 기업체 관계자들과 '잡스 액트'를 고안한 전 정권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고용주 단체인 콘핀두스트리아의 빈첸초 보치아 회장은 "이 법안은 실수"라며 "규정을 더 엄격하게 하는 것으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잡스 액트'를 고안한 렌치 전 총리의 측근인 파올로 젠틸로니 전 총리도 "비정규직을 단속하는 새로운 법안은 이탈리아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한 '잡스 액트' 도입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며 노동시장에 다소 활기가 돌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달 기준으로 실업률이 2012년 8월 이래 최저치인 10.7%까지 떨어지고, 청년 실업률은 31.9%로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최근 고용 시장이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장년층은 노동권을 엄격히 보장하는 종전의 고용 원칙의 적용을 받아 정규직의 지위를 누리는 반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 대다수는 권리과 혜택 보장이 느슨한 임시직에 종사하게 되는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부작용으로 꼽혔다.
지난 5월까지 1년 간 이탈리아에서 임시 일자리는 43만4천개가 늘어난 반면, 정규직은 같은 기간 고작 5천개가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은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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