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을 사랑한 두 청춘…"아름다운 그의 세계, 음악에 담겼죠"
바이올린 김다미-피아노 문지영, 오는 7일 듀오 무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2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30)와 피아니스트 문지영(23)은 오후 6시부터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그야말로 '불꽃 리허설'을 진행했다.
한 템포도 쉬지 않고 그토록 오랫동안 집중해서 리허설한 경험은 두 사람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이들은 리허설이 끝나고 이렇게 외쳤다. "아니, 이렇게 좋은 곡을 왜들 안 할까요?"
이들이 이토록 푹 빠진 작품은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3곡). 오는 7일 서울 서초동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선보일 곡들이다. 작곡가의 강한 개성과 까다로운 기교 때문에 전곡 연주 무대는 자주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발견된 소나타 3번의 경우는 실연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3일 서울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이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을 택한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슈만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슈만은 스승의 딸이자 당대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의 로맨스 속에서 '낭만 끝판왕'이라 할만한 명곡들을 남겼다. 시적인 감성과 환상적 분위기가 넘실댄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동시에 음울하면서도 불안정하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특성을 그가 심각하게 앓았던 정신병과 연관시킨다. 그는 라인강 투신과 정신병원 수용 등으로 고생하다 4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김다미 역시 슈만 음악의 '이중적' 매력에 빠져든 경우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아마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이중성을 가장 여실히 드러낸 작곡가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슈만이 될 겁니다. 저와 가장 닮은, 저를 가장 많이 반영한 음악이에요."
그는 어릴 적 '착하다'란 평가를 늘 달고 살았다. 그의 음악 스승들은 "네 음악은 너무 착하다, 너는 조금 나빠져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2010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1위 없는 2위), 2012년 하노버 국제 콩쿠르(1위) 등 출전한 모든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을 기록한 그의 독보적 기록도 사실은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었던" 착한 딸의 몸부림이었다. "그때는 콩쿠르에 나가서 입상하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제가 부모님을 포함한 타인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겼어요. 제가 그렇게 무한히 착한 사람도 아닌데, 타인에게 그렇게 보이는 데 신경을 썼던 거죠. 결국 그 화를 풀 곳은 저 자신뿐이었고요. 주기적으로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했었죠. 그래서 슈만이 제 마음에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의 음악은 너무도 아름답고 낭만적인데, 또 동시에 어둡고 치열하고 강렬하기도 해요. 극단적으로 분위기를 변덕스럽게 바꾸는 표현 방식이 감명 깊어요."
문지영 역시 슈만을 "굉장히 자연스럽고 솔직한, 인간적인 음악"으로 설명했다.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을 거머쥔 그는 작년 발표한 첫 앨범(도이체 그라모폰) 역시 슈만으로 가득 채웠다.
그가 슈만을 처음으로 제대로 접하기는 16세 때였다.
"콩쿠르 때문에 '환상소곡집'을 공부한 게 슈만과의 첫 인연이에요. 연습할 땐 사실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무대 위에서 굉장히 새로운 경험을 했죠.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땐 이 부분, 저 부분 신경 쓰이는 포인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으로 무대에 섰을 때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딱 그 음악만 존재하는 느낌이었어요. '아, 신기하다. 이게 뭘까' 싶은 마음으로 슈만의 다른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김다미에게도 그런 '특별한 순간'은 슈만과 함께 찾아왔다.
"2012년 미국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슈만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하며 어떤 구체적 형상이 떠올랐어요. 한 노인이 벽난로만이 타고 있는 어두운 방에서 담요를 덮고 앉아있는 모습이었죠. 이를 음악으로 만드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지금까지도 다섯 번도 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음정 하나라도 빗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던 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던 계기가 됐습니다."
이들이 한 무대를 꾸미기는 처음이지만, 슈만을 공통분모로 엮인 이들 듀오 궁합은 벌써 '찰떡'이다.
문지영은 "언니(김다미)의 오랜 팬"이라며 까르르 웃었고, 김다미는 "평생 노예 계약이라도 맺고 싶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지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올라오는 일상 사진이 굉장히 소소해요. 단순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호감으로 생각해왔죠.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가까워져서 기뻐요."(김다미)
"연주를 잘하는 것과 누군가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요, 언니의 연주는 후자입니다. 들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문지영)
이들이 이번에 연주하는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은 특히 그의 우울증이 극심한 시기에 작곡된 곡들. 슈만이 고통스럽고 집요하게 자기 자신을 응시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슈만의 정신병력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음악을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그런 해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냥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음악으로 들려드리고 싶어요."(문지영)
"슈만의 머릿속은 아무도 모르죠. 그러나 전 그가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음악이 그걸 알려주고 있거든요. 이번 연주회만큼은 다른 사람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가 느끼고 사랑하는 슈만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김다미)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