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도 "진보와 보수 대립 있다"…김정은, 강경파 견인 가능할까

입력 2018-07-03 14:51
北에도 "진보와 보수 대립 있다"…김정은, 강경파 견인 가능할까

기존 대미 협상 익숙한 미국통·軍인사, 김정일 시대 관성 큰 듯

김정은 북미 대화 주도 가능성…강경파 견인 명분제공 필요한 듯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 내부에서도 미국과의 협상을 준비 과정에 변화의 목소리와 보수적 태도가 부딪치며 고민한다는 관측이 감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1일(현지시각) 미국 '폭스뉴스 선데이'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 오찬 도중 어느 시점인가에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우리 둘이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한다', '내가 (북한에 있는) 나의 강경파들에게 당신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혀 주목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북한 내에도 대미 협상 전반을 관장하는 고위 간부와 실무자 가운데 강경하고 보수적인 대미 입장을 가진 인사들이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특히 '나의 강경파'라고 지칭한 것은, 그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이거나 핵심 실무자들임을 암시한다.



다른 각도로 보면 '선(先)핵포기·후(後)보상'의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해온 볼턴 보좌관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목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에서 비핵화 협상을 미국의 '체제 붕괴 노림수'로 보고 극도로 경계하는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여전히 의심하며 '북한에 속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거센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내부에도 보수적 관점으로 경계하는 강경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볼턴 보좌관에게 건넨 발언은 단순히 외교적 제스처라고만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구체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에서 대미 및 대남 외교를 총괄하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정통 군 출신으로, '군=보수'라는 통상적인 인식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고위급회담 대표로 참여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만드는데 깊숙이 개입해 핵 문제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만, 기존의 협상에 익숙한 인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앞에 두고 '저 사람 때문에 안 되는 일이 많았다'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포함한 북한의 대표적 미국통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대미 협상을 해온 탓에, 김정일식 '벼랑 끝 전술'에 익숙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탓에 이들의 협상 경험은 북한에 유익하고 필요하기도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도 초래한다.

대표적 사례로 지난 5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볼턴 보좌관 비난 담화와 최선희 부상의 펜스 부통령 담화가 꼽힌다.

미국에서 리비아모델 발언 등이 이어지자 북한은 김정일 때 방식으로 온갖 험한 표현을 동원해 비난하면서 '정상회담 재고려'를 언급했다. 김정일 집권 시기 이런 '강경 대 초강경'식 대응이 통했거나 판을 뒤집는 명분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비즈니스에 능숙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라는 '예상치 못한' 결정을 초래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포위돼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북과 김정은 위원장 면담 등을 지켜본 한 외교소식통도 "북한 외무성의 협상 전략가들이 김정일 프레임 관성의 연장선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다른 건 몰라도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일으켜 세우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만큼은 확고한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고위층 출신의 한 탈북자는 "아무리 김정은 위원장이 관계 개선 의지를 갖고 추진력 있는 방안 마련을 요구해도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간부들은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앞서가는 제안을 내놓았다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70년간 대립해온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가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달린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변화를 주도하면서 남한, 미국,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볼턴 보좌관은 폭스뉴스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단지 '외교를 보호막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자신은 '과거 정권'과는 다르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는 조부와 부친인 김일성·김정일 정권과 다르다는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 정권의 대미협상 태도와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 비핵화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도 '과거와 단절'을 강조한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늘 여기까지 와 닿는 과정이 결코 헐치는 않았다"며 "과거의 역사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우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짓밟고 이렇게 이 자리에까지 왔으며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을 수시로 소개하면서 "뜻깊은 말씀",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3주가 지났는데도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 미국 등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형국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최근 북미 간 협상의 소강 국면과 관련해 "북한 내부적으로 아직 김정은 위원장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임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앞서가는 김정은 위원장과 힘겹게 뒤따라 가는 북한 간부들 사이의 인식격차가 앞으로 어떻게 조정될지가 체제의 명운을 건 북한의 대미 협상이 '해피 엔딩'이 될지, '새드 엔딩'이 될지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남한과 미국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이 강경파를 설득하고 견인할 명분을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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