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세계의 위기] ⑥ '공존' 모색하는 유럽…난민의 사회통합이 관건
언어교육·취업지원 등 다양…'혐오' 막기 위한 법 장치도
"난민 찬반에 대한 진영논리 벗어나 세심한 정치교육 필요"
밀려드는 난민에 망명심사 '하세월'…보호시설 부족 문제
(베를린·로마·파리=연합뉴스) 이광빈 현윤경 김용래 특파원 =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 500명으로 인해 한국에서 난민 논란이 촉발되면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된 유럽의 대응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 300만 명가량의 난민이 몰린 유럽은 정치·사회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안게 됐다.
정치적으로 반(反)난민 정서를 영양소로 삼은 포퓰리즘과 극우 정치권이 급부상했다.
난민 속에 숨어들어 싹을 틔운 테러리즘은 난민에 대한 유럽사회의 시선을 따갑게 만들고 '이슬람 포비아'를 키웠다.
그러나 이런 난관 속에서도 유럽은 난민이 사회 속으로 녹아들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최근 3년간 120만 명 정도의 난민을 수용한 독일은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지만, 난민의 사회통합을 최대 화두로 삼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초점은 공존이다. 난민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서 문화적으로 기존 국민과 한데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다.
◇ 난민 정착지원에 주력…난민유입, 경제성장에 도움
독일은 2016년 7월 난민통합법을 마련해 난민을 상대로 언어교육과 취업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난민통합법은 난민이 갖는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난민의 생활을 기본적으로 보호하면서 노동시장에 용이하게 진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난민을 상대로 매달 400유로(52만원)의 생활비와 주거비, 의료보험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언어교육도 의무적으로 660시간의 독일어 수업을 받도록 한다. 지난해 언어교육 예산은 전년보다 두 배로 늘어난 5억5천900만 유로(약 7천255억원)에 달했다.
독일 정부는 산업계와 연계해 난민을 상대로 직업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지중해를 통해 북아프리카의 난민이 대거 넘어온 이탈리아는 지난해 9월 범정부 차원의 '국가 통합 계획'을 발표하고, 난민의 사회통합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망명심사를 통과한 난민을 상대로 이탈리아의 가치와 언어, 취업에 필요한 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난민을 상대로 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회통합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CHR) 이탈리아 지부의 카를로타 사미 대변인은 이와 관련, "많은 난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참지 못한다"며 "그들을 환영하는 공동체를 위해 하루에 몇 시간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난민들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역시 망명심사를 통과한 난민을 상대로 주거보조와 의료보호, 기초수입 등 다양한 사회보장책을 제공한다.
난민의 사회통합이 빠를수록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소속 파리경제대학원 등이 1985∼2015년에 서유럽 15개국에 유입된 난민들이 미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난민 인정을 받고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한 뒤 3∼5년이 흐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세수 증가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구나 실업률도 떨어뜨렸다.
난민은 대체로 청년층과 중년층이 많아 국가의 사회보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데다 인력난을 겪는 3D 업종 등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한 국제기구의 난민정책 전문가는 연합뉴스에 "난민의 대규모 유입은 경제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각국 정부가 깨달아야 한다"라며 "난민의 사회통합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난민은 경제에 부담이 아니라 경제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난민이 경제적 권리와 문화적 권리뿐만 아니라 투표할 권리도 가져야 한다"라며 "난민이 투표권을 행사해 자신들을 위한 정책 형성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정착지원이 원활한 것만은 아니다. 독일은 밀려든 난민으로 망명심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년여를 기다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연방이민난민청(BAMF)의 브레멘 사무소에서 직원들이 뇌물을 받고 망명을 승인한 의혹을 받는 것도 이런 난맥상의 파생물이다.
독일에 정착한 난민과 이민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독일어 시험에서 일정 기준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해 언어교육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는 망명심사를 통과하기 전 난민에 대한 대우가 매우 취약하다. 보호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난민 신청 절차가 까다롭다.
이탈리아도 보통 난민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2년이 넘게 걸린다.
◇ 정치교육의 중요성 커져…"난민 상대 헌법적 가치 교육 강화해야"
독일의 '혐오게시물 차단법(네트워크 시행법·NetzDG)'은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이 법은 소셜미디어 사업자가 차별·혐오 발언이나 가짜뉴스를 방치할 경우 최고 5천만 유로(약 649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난민을 상대로 온라인에서 혐오 발언을 일삼아온 AfD 의원들은 올해부터 잇따라 이 법 때문에 발언이 삭제되고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이 법은 나치 추종과 유대인과 난민 혐오 등이 온라인에서 표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 진보진영과 AfD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련됐다.
난민 등 소수자가 사회에 안착하고 기존 독일인들도 선동과 가짜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려는 사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만으로는 난민에 대한 혐오를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난민에 대한 정착 및 취업지원뿐만 아니라 난민이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현지인들도 난민들의 문화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정치교육'이 뿌리를 내려왔다.
일차적으로 학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기본법의 가치와 환경, 산업사회에 대한 이해 등을 교육해 정치참여 능력을 기른다.
연방정치교육센터와 주(州)정치교육센터에서도 정치교육을 진행해왔다.
독일에서는 난민에 대한 혐오가 사회 문제시되면서 정치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진 베를린 훔볼트대 박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난민에 대한 교육 등 대처방식이 계몽주의적이거나 도덕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라며 "현지인들이 난민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정치교육을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난민들 상대로도 독일의 정치·사회적, 헌법적 가치에 동의하도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예멘 난민 논란과 관련해 난민 수용을 찬성하고 배척하는 두 가지 진영논리가 통용되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면서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정치교육을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난민이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정치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향후 전개될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종교계 노력도 난민의 사회통합에 한몫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는 카리타스, 산테지디오 공동체와 같은 가톨릭 자선 단체를 중심으로 난민 지원과 이민자 사회통합 활동이 벌어지는 게 특징이다.
카리타스는 난민들에게 긴급 식량을 배급하거나, 난민 자격 획득에 필요한 법률 상담이나 심리 상담을 해주고, 이탈리아어 교습과 제빵, 요리 등 구직에 필요한 간단한 기술을 가르치거나,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이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산테지디오는 이탈리아 정부의 승인을 받아 시리아,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 내전 지역의 난민들을 비행기를 통해 이탈리아로 데려와 정착시키는 '인도적 통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목을 받아 왔다.
2016년 2월 이래 현재까지 어린이, 여성, 장애인 등 1천여 명의 취약 난민이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조악한 배 대신 안전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합법적으로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이들은 이후 산테지디오 공동체 회원과 자원봉사자 등으로부터 주거지를 제공받고,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구직 활동에 도움을 받는 등 이탈리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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