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세계의 위기] ② 反난민 광풍에 극우 약진…유럽 정치지형 '지각변동'
이탈리아 서유럽 최초 극우·포퓰리즘 정권 출범…독일 프랑스 우경화 가속
오스트리아·헝가리·슬로베니아 등 중동부 유럽도 속속 '우향우'
(로마·베를린·파리=연합뉴스) 현윤경 이광빈 김용래 특파원 =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세가 불안정해지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물밀듯 밀려듦에 따라 유럽은 2차 대전 이래 최악의 난민위기에 직면했다.
대량 유입되는 난민들은 유럽의 정치지형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동안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이 지난 몇 년간 대중에 광범위하게 퍼진 반(反) 난민, 반 이슬람 정서를 자양분 삼아 유럽 곳곳에서 눈에 띄게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
정치권의 변방으로 치부되던 이들은 최근 선거를 통해 각국의 주류 세력으로 속속 자리매김하며 유럽 정계를 뒤흔드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의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에 서유럽 최초의 극우·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선 것을 비롯해 동유럽의 헝가리,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난민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유럽연합(EU)의 난민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이 집권에 속속 성공했다.
그동안 비교적 난민에 포용적이던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반난민, 반이슬람 성향의 극우 세력이 득세하며 사회의 우향우 기류에 속도가 붙고 있는 형국이다.
◇ 난민 관문 전락한 이탈리아, 서유럽 최초 포퓰리즘 정권 출범
2013년 이래 현재까지 지중해를 건너 난민 70만 명이 입국한 탓에 난민으로 인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난민 위기가 지난 3월 총선의 향배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탈리아가 난민들에 침략당했다"는 자극적인 구호 아래 집권 시 불법 체류 난민 50만 명 전원을 본국으로 송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극우정당 '동맹'은 총선에서 17.4%를 득표하는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손잡고 연합정부를 합작해 당당히 정권의 한 축을 꿰찼다.
2013년 총선 당시 득표율 4%에 그쳤던 동맹은 반난민 분위기를 타고 총선 이후에도 지지율이 수직 상승한 덕분에 3월 총선에서 약 33%로 최다 득표를 한 오성운동을 제치고 급기야 이탈리아 정당 중 지지율 선두로 올라섰다.
지난 6월 29일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맹의 지지율은 31.2%로 나타나 29.8%에 그친 오성운동을 따돌렸다.
지난 5년간 집권 정당이던 중도좌파 민주당과 약 25년동안 이탈리아 우파 진영의 맹주로 군림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는 동맹의 기세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민주당은 18.9%, FI는 8.3%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해 좀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동맹의 이 같은 지지율 신장은 새 정부에서 내무장관 겸 부총리로 취임한 마테오 살비니 대표의 강경 난민 정책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살비니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이탈리아는 유럽의 '난민캠프'가 될 수 없다"며 국제 구호단체 난민구조선의 이탈리아 입항을 전격 거부,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 프랑스, 몰타, 독일 등 주변국들과 갈등을 촉발한 장본인이다.
난민 문제를 다시 전 유럽 차원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시키며 난민 정책을 둘러싼 유럽연합(EU)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한 그는 국내에서는 난민 위기를 '나홀로' 떠안다시피 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 속에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우선'을 천명하며, 지중해에서 난민구조 활동을 펼치는 외국 비정부기구(NGO)에 항구를 닫아걸고, 불법 난민과 이슬람 신자, 집시 등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그의 극단적인 시각은 동시에 국내외에서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독일에선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급부상
독일은 지난 9월 총선에서 반난민·반이슬람을 내세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7%를 득표해 제3정당으로 원내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이 2015년과 2016년 10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후 사회통합 과정이 여의치 않으면서 발생한 반난민 정서를 자극해 얻어낸 결과다.
AfD는 2013년 총선에서는 5%를 득표하지 못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었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대연정 구성에 애를 먹는 등 난맥상을 보이면서 꾸준히 지지율을 높여왔다.
더구나 대연정 구성 후에는 제1야당으로 부상해 의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AfD의 부상은 보수정당인 기독사회당과 자유민주당의 우경화를 초래하고 있다. 난민에 부정적인 보수 유권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반난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후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자유민주당, 녹색당 간의 연립정부 협상 과정에서도 자민당이 난민정책 등에서 강경하게 나와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기민·기사 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연정 협상에서도 기사당이 연간 난민 입국을 20만명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들고 나와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사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EU 회원국에 망명 신청을 한 난민의 입국을 거부하는 방안의 정책을 내놓아 이에 반대하는 메르켈 총리와 충돌했다. 바이에른 주(州)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당이 10월 주 선거를 의식한 것.
이 때문에 대연정의 붕괴 우려까지 나왔지만 6월 28∼29일 EU 정상회의에서 난민정책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독일 내 갈등 양상도 풀릴 전망이다.
◇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2015년 테러 이후 극우 세력 결집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 역시 난민과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적인 기류에 편승해 극우 정치 세력이 약진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최근 '국민연합'으로 개칭)의 당 대표 마린 르펜은 작년 프랑스 대선에서 반(反) 유럽연합과 반 난민을 내걸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민자와 난민이 꾸준히 들어온 프랑스는 특히 2015년 11월 130명이 희생된 파리 연쇄 테러 이후 사회가 얼어붙었다.
이 사건으로 이슬람계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악화한 것이 극우 세력 결집의 도화선이 됐다.
르펜은 비록 대선 결선에서 맞붙은 에마뉘엘 마크롱(현 대통령)에게 큰 표차로 패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반체제세력에 머무른 극우 진영이 대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인식을 안겨줬다.
르펜은 대선 진출의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당의 이미지에서 극우 색채를 희석하고자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으로 당명을 바꾸고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 중동부 유럽도 반난민 광풍 타고 속속 '우향우'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서도 반난민, 반이슬람을 기치로 내건 정치 세력이 속속 주류로 발돋움하고 있다.
작년 10월 실시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반 난민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극우 자유당은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정부와 연정을 구성해 주류 정치무대로 진입했다.
<YNAPHOTO path='AKR20180701050300109_05_i.jpg' id='AKR20180701050300109_4201' title='' caption='오스트리아 극우 연정을 이룬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당수 겸 부총리(왼쪽)와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중도우파 국민당) [EPA=연합뉴스] '/>
헝가리에서는 EU의 난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지난 4월 반 난민 정책에 힘입어 3연임에 성공했다.
오르반 총리는 EU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동유럽 국가의 대표 격으로 '유럽 정체성'의 위기를 거론하며 무슬림 난민 수용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최근 총선이 끝난 슬로베니아에서도 반 난민 캠페인을 벌여온 우파 정당 슬로베니아 민주당(SDS)이 제1당이 됐다.
앞서 폴란드에서도 2016년 반 EU, 반 난민을 내세운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이 권력을 잡은 뒤 사법부 독립이라는 EU의 가치를 훼손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을 추진해 EU와 대립해왔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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