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내 금니 빼달라는 남편…죽음·이별의 풍경들
장례지도사 양수진씨 에세이 '이 별에서의 이별'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암 투병을 하다 끝내 숨을 거둔 40대 여성이 여전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안치대 위에 누워 있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 남편은 조용히 다가가 아내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하며 말한다. "정말 사랑했습니다."
슬프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이별 장면이다.
이제 고인이 된 어느 할머니는 생전에 미리 준비한 자신의 수의 상자에 현금 100만여원과 함께 짧은 편지를 넣어뒀다. 편지에는 '나는 걱정하덜 말고 너거들만 잘 살면 된다. 너거들은 잘못한 기 없다. 너거들 잘 사는거시 나의 소원이다. 싸맨 돈은 장례비로 써다오'라고 쓰여있다. 어머니를 잘 모셨느니, 못 모셨느니 하며 싸우던 자식들은 이 편지를 보고 함께 눈물을 쏟는다.
어떤 부잣집 상주는 조문객들에게 보이는 제단 꽃은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고르고 정작 대접하는 음식은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고른 뒤 손님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다시 상에 올리라는 어이없는 요구까지 한다. 이 가족은 장례 첫 날이 저물자마자 부의함을 열고 돈을 세기에 바쁘다.
또 어떤 남편은 죽은 아내를 입관하는 와중에 상조회사에 '아내의 금니 여섯 개를 빼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장례지도사 양수진 씨는 최근 펴낸 에세이 '이 별에서의 이별'(싱긋)에서 장례식장의 이런 풍경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누군가의 죽음 직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머무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수많은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만큼이나 각양각색, 천태만상이다.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슬픈 이야기,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쾌한 이야기가 뒤섞였다.
죽음을 둘러싼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가까운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이별한 것인가' 하는 문제뿐 아니라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 '내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 앞에서 과연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 이야기를 듣노라면 장례식장만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자명하게 드러내는 공간도 없어 보인다.
저자는 여러 죽음과 이별 사례를 소개하고 장례 절차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자신의 이야기도 담담히 들려준다.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모색하다 우연히 장례지도사 일에 관심을 두게 된다. 무턱대고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공부의 막연함에 고민하다 현장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상조회사에 들어간다. 회사 연수 과정에서 처음으로 시신을 정돈하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 등 실전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 직종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그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꿈을 키워가지만, 가족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고 현장에서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거나 '시집 못 가는 것 아니냐'는 지독한 성차별적 언어와 시선에 시달린다. 한동안 일에다가 관계에 지치고 우울감에 빠져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전문가로서 경력과 자부심을 쌓아간다.
현재 30대 중반이라는 그는 남들이 잘 볼 수 없는 삶의 이면을 수없이 목격한 데서 비롯된 듯 상당한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장례를 치르는 3일간은 한 가정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장소가 집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함께 지내다 보면 집에서 하는 언행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략) 사람들은 흔히 돈이 있으면 저절로 가정이 화목해지고 마음도 넉넉해질 것이라 넘겨짚지만 내가 직접 본 바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는 합리적 소비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장례에서도 작은 것에 정성을 담아 주고받는 삶의 태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236∼237쪽)
"마침내 죽음 앞에 무엇이 남는가? 화려한 명성인가, 덜 입고 덜 먹어 모은 돈다발인가. 그래, 결국 사람이다. 결국 사랑이다."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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