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없이 중절·불임수술 당했다"…日 지적장애 70대 여성 소송
'불량한 자손 출생 막는다'는 우생보호법 피해자들 소송 잇따라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에서 과거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 등에게 인공 중절·불임수술을 실시했던 것이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가운데, 70대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8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홋카이도(北海道)에 사는 여성 A(75)씨와 남편 B(81)씨는 28일 '우생(優生)보호법'으로 인공 중절수술과 불임수술을 함께 강제당해 행복추구권과 성·생식에 관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국가에 2천200만엔(약 2억2천4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삿포로(札晃) 지방재판소에 냈다.
어렸을 적 고열로 지적장애가 생긴 A씨는 30대에 B씨와 결혼해 임신했지만, 친척 손에 이끌려 수술대에 끌려갔다.
친척들은 "아이를 낳을 능력도 키울 능력도 없다"고 다그쳤고 이에 B씨는 어쩔 수 없이 수술에 동의했다. A씨는 영문도 모른 채 수술을 받았다.
A씨는 소장을 통해 "갖기를 기다리던 아이의 출생 기회를 빼앗겼고 두 번 다시 임신을 못 하게 됐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 기회를 빼앗겼다"고 항변했다.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괴로웠던 자신의 삶의 배경에 일본 정부가 1948~1996년 시행한 '우생보호법'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이 문제시돼 폐기된 후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 구제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 삼고 있다.
나치 독일의 '단종법(斷種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우생보호법은 지적 장애인, 정신질환자, 유전성 질환자 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인공 중절수술과 불임수술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 법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는 목적하에 이런 '만행'을 용인했다.
일본 정부는 법 시행 과정에서 신체 구속, 마취약 사용 등을 통해 대상자를 속여서 수술하는 것도 용인했고,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의 재촉에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수술 대상을 찾기도 했다.
일본변호사협회 등에 따르면 이 법으로 5만1천276건의 인공 임신중절 수술과 2만5천건의 불임수술이 실시됐다.
일본에서는 올해 초부터 이 법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씨 이전에 이미 4명이 센다이(仙台) 지방재판소, 삿포로 지방재판소, 도쿄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전 사례들은 모두 불임수술 피해자였고, 인공 중절수술 피해를 호소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은 A씨가 처음이다.
한편, 이날 구마모토(熊本) 거주 남성 C(75)씨는 우생보호법으로 동의 없이 고환을 제거당했다며 구마모토 지방재판소에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변형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던 그는 10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서 고환 적출 수술을 받았다.
신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결혼을 단념한 채 자살도 고려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고환 적출로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면서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 정부의 만행과 관련해 피해자들이 괴로웠던 삶에 대한 고백을 잇따라 하고 관련 소송도 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1월 제기된 관련 소송에 대해 "우생보호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해 제정한 법률"이라며 법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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