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성악가 전준한 "무대와 주방은 다 같은 삶의 무대"

입력 2018-06-28 17:11
요리하는 성악가 전준한 "무대와 주방은 다 같은 삶의 무대"

신간 '전준한의 오페라 식당'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예전에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성악가로서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고. 난 이렇게 대답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나의 정서적 교감이라고. (…) 주방에서도 똑같다. 요리를 만들어 접시에 담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주방에 맨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내보낸 접시가 마지막으로 빈 접시가 되어 다시 내 앞에 돌아올 때까지가 요리다."

경기 하남시의 한 이탈리아 가정식 식당을 운영 중인 베이스 전준한(46)이 자신의 음악과 요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신간 '전준한의 오페라 식당'(살림 펴냄)에서다.

그는 요리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요리하는 성악가'란 호기심을 자극하는 타이틀로 방송에도 몇 번 출연했다.

그는 무대와 주방에 대해 "겉보기에 달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 같은 삶의 무대"라고 소개한다.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요리사가 된 것도 모두 운명에 가까웠다. 대일외고 스페인어과 재학 시절 우연히 관람한 테너 박세원 출연 오페라 '카르멘'에 매료된 그는 성악으로 전공을 급변경했다.

수차례 도전 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입학했고, 나이 서른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10년을 살았다.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횟수만 14번에 달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이드 일을 하고 한인 민박집도 운영했다.

생계도 문제였지만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눈물을 쏟기도 여러 번이었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 노래 연습을 제대로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악가의 목에 가장 치명적인 게 바로 말을 많이 하는 거다. 그런데 가이드는 종일 말을 하고 목을 쓴다. 이러다 성악가로서는 끝나는 건가 싶었다. 절망감이 몸으로 느껴졌다."(104쪽)

그러나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들을 열어나갔다.

"말을 많이 해서 성악을 못할 것 같았지만 그걸 넘어서니 몸이 단단해지며 꼭 득음을 하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많은 콩쿠르에 나가 상들을 연달아 받기 시작한 것이다. (…) 가이드 일도 한때 대인기피 증상을 겪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내공이 됐다. 사람을 배웠고, 사람 심리를 배웠다."(105쪽)

특히 관광 가이드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이탈리아 문화와 요리는 2011년 귀국 이후에도 든든한 자산이 됐다. 그는 성악가로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면서 2015년 11월 식당도 열었다.

이번 책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 오페라와 이탈리안 요리를 향한 열정 등이 담겼다.

그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와 짭짤한 안초비 피자, 질리의 '물망초'와 토마토소스 파스타, 푸치니의 '토스카'와 카초 에 페페(치즈와 후추로만 맛을 낸 파스타), 가곡 '명태'와 로마 중국집의 동태 매운탕 등을 엮어 인문학 에세이식으로 풀어냈다.

"기다려야 본질이 나온다. 나는 성악도, 음식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리오 올리오의 본질이 대단한 비법 레시피에 있는 게 아니라 마늘과 올리브유에 있는 것처럼."(249쪽)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교양 지식, 이탈리아 요리·명소에 대한 다양한 사진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296쪽. 1만5천원.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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