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거인의 '슬픈' 유언 235년 만에 이뤄지나
수장 유언 불구 유골로 전시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런던 '헌터리언 박물관(Hunterian Museum)' 중앙에는 231cm에 달하는 거인의 유골이 유리 안에 세워져 전시돼 있다. 이 유골의 주인은 '아일랜드 거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짧은 생을 살다 간 찰스 번(Charles Byrne)으로 바다에 수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죽어서도 235년째 전시물로 남아 영면에 들지 못하고 있다.
28일 과학뉴스 전문 매체 '사이언스얼러트'에 따르면 번의 유언이 마침내 이뤄질 수도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한다. 숱한 청원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던 박물관 측이 수리를 위해 2021년까지 문을 닫으면서 재개장 때는 번의 유골이 전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박물관 신탁위원회가 휴관 기간에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도 전해졌지만 번의 유언이 이뤄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번은 1761년 아일랜드 시골에서 말단비대증을 갖고 태어났으며, 10대 말에 돈을 벌겠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호기심에 찬 시민에게 자신의 큰 키를 보여주고 1~2실링을 받으면서 '유명인'이 됐다.
당시 해부학자들도 번의 큰 키에 관심을 가졌으며, 스코틀랜드 출신의 외과 전문의사 존 헌터 역시 번이 죽으면 그의 유골을 손에 넣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했다고 한다.
번은 얼마 지나지 않은 1783년 6월 1일 몇 달을 앓다가 숨졌으며, 당시 신문은 그의 집 밖에 번의 신체를 차지하려는 의사들이 "거대한 고래를 가지려는 그린란드 작살 꾼"처럼 모여들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
번은 이런 점을 우려해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무거운 관에 넣어 바다에 가라앉혀 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친한 친구들이 대형 관을 구해 해변으로 운구하는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시신은 사라지고 돌로 채워졌으며, 나중에 살이 발리고 백골화된 유골이 헌터 박물관 전시물로 등장했다.
번의 유골 전시를 놓고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박물관 측은 교육적 효과가 높고 번의 조상들이 전시를 희망했다는 말로 일축해 왔다.
박물관이나 연구단체들이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유골이나 소장품의 반환을 과학적 연구를 명분으로 거부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번의 슬픈 사례에서는 "오랫동안 그렇게 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가 절실히 원했던 바닷속에서의 평화를 줘야 할 시기가 됐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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