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즘 포비아] ④ "관광객 유치에만 연연" 지자체 과욕이 화근?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리는 관광산업, 지자체 관광객 유치 과열
양적 팽창 정책으로 주민과 갈등 빈번, "지역 실정에 맞는 관광정책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교통오지라는 오명을 벗고 1천만 관광시대를 열었다. 이제 군민의 힘을 발판 삼아 2천만 관광시대를 맞이하겠다."
6·13 지방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이희진 경북 영덕군수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관광산업 육성을 언급했다.
인구 3만8천 명 남짓인 소도시가 수도권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래불 해수욕장과 팔각산, 해맞이공원 등 수려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영남권 주요 관광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재선을 이룬 심민 전북 임실군수도 500만 관광객 유치를 선언했다.
옥정호와 섬진강을 관광지로 개발해 임실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관광 기반을 닦겠다고 말했다.
인구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임실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원대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전남 담양군도 '2018 담양 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선언했고, 경북 안동시와 경기 포천시도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이들처럼 소규모 지자체들은 '굴뚝 없는 공장', '보이지 않는 무역', '황금알을 낳는 거위' 등으로 불리는 관광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민 소득 증가와 상권 활성화 등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관광산업은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정책이다.
당선 이후 4년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하는 지자체장들은 주저 없이 관광산업 육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광객 유치 성과가 차기 지방선거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러한 정책을 추진 중인 일부 지자체의 설명이다.
이렇듯 부단한 노력으로 관광지 육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관광산업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나머지 원주민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곳곳에서 여러 부작용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역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밀어붙였거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관광객이 한데 몰리면서 관광지 인근 원주민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빈번하다.
관광 활성화에 목맨 지자체의 양적 팽창 위주 관광정책으로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 : 관광 공포·혐오증)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만성적인 주차난과 급등한 물가에 시름 하는 전주한옥마을과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는 여수 낭만포차가 이런 경우다.
전주한옥마을은 불과 10년 전에는 전통가옥이 옹기종기 모인 주거단지였으나, 관광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상업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밀려드는 관광객과 함께 상가 임대료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원주민 1천60가구 중 500가구 이상은 조용한 보금자리를 찾아 한옥마을을 떠났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한해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현상을 더 부추기고 있다.
주말마다 몰려드는 차량과 부족한 주차장으로 한옥마을 도로 전체가 극심한 교통난을 겪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주변 도로 일부까지 주차 공간을 넓혔으나 전국에서 밀려든 차량을 감당하기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전남 여수시 종포해양공원에 마련된 낭만포차도 같은 이유로 원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낭만포차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신선한 해산물과 술을 즐길 수 있어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말에는 포장마차 테이블이 모자라 공원 일부에도 술상이 차려질 정도로 식도락가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산책로였던 해양공원이 술자리 소음과 쓰레기로 오염되자 주민들은 이전 요구까지 할 정도로 포장마차를 허가한 행정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수 시민단체협의회는 "해양공원은 시민이 가족과 함께 밤바다를 즐겼던 공간"이라며 "낭만포차 운영이 시작되고 소음이 가득한 유흥가로 변질했다"고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전문가는 이른 성과를 노린 무리한 관광정책이 원주민과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지역 실정과 주민 정서에 부합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광인 전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지자체에서 성공했다고 지역 현실에 맞지 않은 관광정책을 들여와 추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관광객 숫자에만 연연해 주먹구구식 정책을 밀어붙이는 건 예산 낭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체장 임기에 휘둘리지 말고 지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한 관광정책을 계획하고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만 성공적인 관광지 육성을 기대할 수 있다"며 "관광지의 양적 팽창에 의존한 정책으로 원주민과 갈등을 부추기거나 과도한 물가상승을 야기하면 성공한 관광명소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관광객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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