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락 그리니치천문대 옛 영화 되찾는다

입력 2018-06-26 11:19
'박물관' 전락 그리니치천문대 옛 영화 되찾는다

대기 맑아지고 도심 불빛공해 차단 가능해져 관측 재개 준비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구 경도(經度)의 원점으로, 세계평균시인 그리니치평균시(GMT)의 기준일 정도로 세계 천문학계를 주도해온 그리니치천문대(The Royal Obwervatory at Greenwich)'가 옛 영화 되찾기에 나섰다.

26일 텔레그래프 지를 비롯한 영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60여년 간 천문 관측 없이 '박물관'으로 전락했던 런던의 그리니치천문대가 최신형 망원경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천문관측을 준비 중이다.

찰스2세가 1675년 별을 이용해 항해하는 천문항해술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한 그리니치천문대는 대영제국의 번성과 함께 세계 천문항해술과 천문 관측의 중심이 돼왔다. 하지만 1950년대 말 런던을 덮은 스모그와 도심 불빛 공해 등으로 천문 관측이 더는 불가능해졌으며, 이때문에 주요 시설은 잉글랜드 남동부 서식스주 허스트몬슈로 옮기고 이름만 유지한 채 박물관 노릇을 해왔다. 그리니치 인근에 철로가 놓이면서 진동 때문에 망원경으로 정확한 관측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됐다.

런던 도심 대기가 깨끗해지고, 불빛 공해나 진동을 차단할 수 있는 필터링 기술이 개발돼 도심 속 천문관측이 가능해짐에 따라 그리니치천문대도 다시 생명을 얻게됐다.

그리니치 왕실박물관 측은 지난해 회원과 민간인 등을 상대로 천문대 복원을 위한 모금활동을 펴 15만파운드(약 2억2천만원) 이상을 모았으며, 이를 이용해 새로운 망원경을 새로 구입하고, 빅토리아시대의 걸작인 경위의(經緯儀) 건물도 보수했다.

새 망원경은 그리니치천문대에서 일한 초기 여성과학자의 이름을 따 '애니 마운더 천체항법도 망원경(AMAT)'으로 명명됐다.

이 망원경은 사실상 4대의 서로 다른 망원경이 하나처럼 구성돼 있다. 달과 태양계의 행성을 고배율로 관측할 수 있고, 그리니치천문대가 1870년대부터 시작한 태양의 위치 변화를 측정할 수도 있다. 이는 마운더가 1900년대에 하던 일이기도 하다.

마운더는 영국 천문학계에서 "잊힌 거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1891년 여성이 극히 드물던 그리니치천문대에서 남성 과학자들의 천문 계산을 돕는 '컴퓨터 숙녀'로 일하며 천문 관측 전문가가 됐다고 한다. 그는 결혼으로 4년만에 물러났지만 당시 시대 분위기를 볼 때 천문학자인 그의 남편 월터가 발표한 태양의 활동 주기에 관한 연구 업적 중 상당 부분에 그가 기여한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마운더는 1차대전으로 천문학자들이 전장에 나가자 그리니치천문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니치천문대 천문학자 브렌단 오웬스는 새 시설을 이용한 천문관측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현재 주요 대학들과 천문대 이용에 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문대 관계자들은 새로 설치된 망원경을 이용해 다음달 27일 개기월식 때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완전히 가려 붉게 보이는 '블러드문'을 관측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리니치천문대 1층은 천문 관측이 시작돼도 전시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eomn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