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만에 한자리 모인 성종 태항아리와 태지석(종합)
고궁박물관·한중연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박물관 세 곳에 뿔뿔이 흩어진 조선 성종(1457∼1494)의 태항아리와 태지석(胎誌石)이 약 90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태항아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胎)를 깨끗하게 씻고 갈무리해 보관하던 도자기이고, 태지석은 태의 주인공 이름과 출생일을 기록한 돌이다. 조선왕실은 태를 항아리에 넣은 뒤 길지(吉地)를 찾아 묻고 태실(胎室)을 조성했다.
하지만 조선왕실의 안녕을 바라며 만든 태실은 대부분 훼손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국 각지에 있는 조선왕실 태실 54기를 파내 경기도 고양 서삼릉으로 옮겼고, 1990년대 서삼릉 발굴조사를 통해 찾은 태항아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함께 27일 개막하는 특별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에서 재회한 성종 태항아리 일괄 유물은 태항아리 수난사를 상징한다.
성종 태항아리 유물 5점 중 백자 내항아리와 태지석은 서삼릉 발굴 이후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했으나, 백자 외항아리와 백자 뚜껑은 주인도 모르는 채 각각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었다.
26일 간담회에서 만난 장진아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리건판 사진을 보고 이 유물들이 모두 성종 태실에서 나온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유리건판 사진을 통해 성종 선왕인 예종의 장남 인성대군(1461∼1463) 태항아리 일괄 유물 중 외항아리와 백자 뚜껑이 각각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조선왕실 유물을 주로 관리하는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헌을 연구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처음으로 협업한 이번 전시에는 태항아리를 비롯해 왕실 여성의 임신과 태교, 자녀 양육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나왔다.
윤진영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장은 "태항아리를 어떻게 만들고 안장했는지는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며 "이번 전시는 유물과 문헌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부 '종사지경, 왕실의 번영을 바라다'로 시작한다. 종사(종<蟲에서 위 글자 대신 冬>斯)는 베짱이과 곤충으로, 부부 화합과 자손 번창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산을 암시하는 석류 모양 장식이 달린 비녀,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포도 덩굴을 새긴 책상 같은 왕실 태교와 출산 관련 유물을 보며 자녀 탄생을 염원한 조선왕실을 떠올릴 수 있다.
이어 2부 '고고지성, 첫 울음이 울려 퍼지다'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과정을 조명한다. 왕실이 출산을 위해 설치한 관청인 산실청(産室廳), 아기씨 양육을 담당한 보양청(輔養廳), 아기씨를 돌본 유모인 봉보부인(奉保夫人), 출생 관련 의례에 관한 다양한 기록과 유물을 공개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빠르고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부적인 최생부(催生符)를 모티프로 만든 책갈피가 기념품으로 비치됐다.
3부 주제는 아기 건강과 복, 국가 번영을 기원하며 조성한 태실. 태실 조성 과정을 기록한 의궤, 태실 주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추가로 석물과 비석을 설치하는 가봉(加封) 이후 제작한 그림인 태봉도(胎封圖), 태실 비 탑본, 태항아리를 선보인다.
특히 순조(1790∼1834) 태실 유물은 태항아리와 태봉도, 태실 비 탑본, 의궤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성종 태항아리와 고려대 박물관 소장품인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국보 제177호)를 비롯한 조선 태항아리는 대부분 4부에 전시됐다. 초기에는 도기였던 태항아리가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변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평원대군(1427∼1445) 태를 보관하기 위해 제작한 도자기는 뚜껑 모양 분청사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박물관은 7월 26일과 8월 9일 특별전 연계 강연회를 개최하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체험 행사도 운영한다. 전시는 9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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