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 '고부가가치화'로 '환율벽' 넘었다

입력 2018-06-25 10:48
일본 제조업, '고부가가치화'로 '환율벽' 넘었다

日銀 분석서 '감응도' 마침내 '제로', 환율변동 영향 거의 없다

수출지수 고수준 유지, '트럼프발 무역마찰이 우려 요인'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환율 변동은 더이상 두렵지 않다"

일본의 제조업 수출이 환율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환율변동과 수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양자 사이의 '감응도(感應度)'가 '제로'로 나타났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이 줄어들던 패턴에서 벗어나 가격에 상관없이 계속 팔리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해외 가격을 인하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는게 관행이었지만 요즘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이익을 확보하는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엔화 가치가 올라 가더라도 수출량이 줄어들지 않는 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다.

일본 기업의 수출 지수(실질수출)는 2015년을 100으로 할 경우 4월에 115.4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5월에도 111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최근 수출호조의 두드러진 특징은 환율변동에 관계없이 수출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추세는 일본은행의 '수출의 환율 감응도'분석에서도 확인된다. '감응도'는 엔화 환율변동이 전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다. 2000년대 중반에는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10% 절상되면 수출이 3%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이 감응도가 급격히 낮아져 2016년에는 0.2-04% 수준을 보였다. 작년에는 0~마이너스 0.1%가 됐다. "엔화가치 등락이 수출 증감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어진 상태"(일본은행 조사통계국)라는 것이다.



다이와(大和)종합연구소의 고바야시 순스케小林俊介) 이코노미스트는 환율과 수출증감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어진 가장 큰 요인은 "생산 현지화와 국제적인 통화관리"라고 분석했다.

과거 엔화 강세의 영향을 경험한 기업들이 아시아 등에서 현지생산과 위탁생산을 확대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대금도 외국통화 결제를 늘린 것이 주효했다.

재무성에 따르면 달러화 결제 수출비율은 2017년 상반기에 51%였다. 유로화나 중국 위안화 결제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혼다사의 경우 달러화 대비 엔화환율이 1엔 오르면 연결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140억엔으로 지난 5년간 30억엔 정도 축소됐다. 소니는 엔화가치가 1엔 오르면 거꾸로 영업이익이 35억엔 증가한다고 한다.

최근 수출품이 가격에 관계없이 팔리는 제품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큰 요인이다. 내각부에 따르면 고부가가치재 수출은 전기계측기기, 원동기, 자동차 등 일본의 대표적 산업에서 특히 높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설비의 경우 한국과 대만 업체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지만 품질을 뒷받침하는 박막가공과 진공운반 작업을 담당하는 장치는 도쿄(東京)일렉트론 등의 제품이다. 한국과 대만산 반도체 수출이 늘면 이들 기업의 수출도 증가하는 구조다.

원동기에서는 항공기 부품 수출이 늘고 있다. 미국 보잉이나 유럽 에어버스 등이 항공기업계의 큰 손이지만 엔진부품은 일본제품이 강세다. 가와사키(川崎)중공업은 "엔화 약세 국면에서도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수출도 소형차에서 SUV 등으로 주력 제품을 바꿔가고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의 다카타 하지메(高田創)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도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기업들이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 평가절상 이래 오랫동안 겪어온 환율의 벽을 마침내 극복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트럼프 미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촉발한 무역마찰이 새로운 난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가 중국 IT(정보기술)와 반도체 사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일본의 제조장비와 부품 수출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검토중인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부과가 결정되면 환율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무역전쟁에서는 각국의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공격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외에 전자부품과 공작기계 등이 목표물이 되면 일본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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